국민 쌈짓돈 200조 불투명한 운용…주택기금, 외부견제 받나
차규근 의원, 기금법 개정 추진
광역·기초 지자체 협의체 대표자
위원회 당연직 위원으로 포함
심의·결정 회의록 공개 의무화
주거안정 목적, 투명하게 관리
연간 수입·부채 등 자산 240조
청약저축 납입·복권 전입금 조성
공무원·소수전문가 폐쇄적 운용
연간 100조원 넘는 규모로 운용되는 주택도시기금을 보다 투명하게 관리하기 위한 법 개정이 추진된다. 그간 국토교통부나 재정 당국을 중심으로 폐쇄적으로 운용된 탓에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을 알기 어렵고 그로 인해 외부 견제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주택도시기금이 임대주택 공급을 비롯한 국내 주거 정책의 핵심 재원으로 쓰이는 만큼 향후 논의 방향에 관심이 모인다. ▶아시아경제 8월12일 자 6면, '정책대출 180조 육박' 참고
"회의록 공개·공시 의무…외부 목소리 반영 지배구조 필요"
14일 아시아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은 이러한 내용을 담은 주택도시기금법 일부 개정안을 이른 시일 내 대표발의할 예정이다. 기금 운용과 관련한 심의·결정 과정을 회의록으로 정리해 국회 등 외부에 공개하는 걸 의무화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지금은 회의록으로 정리하는 건 의무지만 외부 공개 의무가 없어 기금을 쓰는 방향을 결정할 때 구체적인 논의 내용이 공개된 적이 한 번도 없다.
차 의원은 이번 개정안 제안 배경으로 "주택도시기금이 국민 주거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만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가 마련되지 않아 국토부 결정에 의존하고 있다"면서 "기금 운영체계를 개편하고 공시를 통해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를 도입해 국민 주거 안정에 기여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발의안을 보면 기금 운용을 위한 위원회를 구성할 때 외부 의견을 반영할 수 있도록 당연직 위원으로 광역·기초 지방자치단체 협의체 대표자를 포함하도록 했다. 현재는 국토부 장관이 위원장, 당연직으로는 국토부 공무원 2명이 맡는 구조다. 지역에서 주거복지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기금 접근성이 낮다는 지적이 그간 꾸준히 제기돼 왔다.
회의록 공개를 의무화한 점도 기존과 달라지는 부분이다. 회의 후 1년이 지난 시점에 회의록을 공개하는 한편 업무수행에 차질을 빚거나 금융시장에 해를 끼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면 4년 후에 회의록을 공개토록 했다. 다만 이때도 소관 상임위에서 요청할 경우 비공개로 제출하도록 했다.
기금평가위원회나 별도의 분과 위원회를 구성하는 방안도 개정안에 담았다. 평가위는 주택도시기금이 주로 투입되는 공공임대주택이나 정책대출 등 개별 사업을 비롯해 운용성과·회계처리 등 전반적인 사안을 살펴보는 기구다. 주거복지·도시, 기금제도와 관련한 외부 단체가 추천하는 위원을 두도록 했다. 마찬가지로 외부 전문가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현 구조를 개편하는 방향이다.
국회 보고 의무도 법 조항에 포함했다. 회계연도를 마친 후 기금운용위에서 6개월 안에 기금 운용 성과와 결과 분석, 주거안정 기여도, 지속가능성 등을 분석해 연간 보고서 형태로 국회 상임위에 제출하는 걸 의무화했다. 대규모 자금을 쓰는 신규 사업을 할 때도 사전보고 절차를 거치도록 했다. 기금 운용 효과를 측정하기 위해 입주 가구의 주택면적이나 주거비 부담 변화, 지역별 공공임대 비중, 하자 발생 빈도, 임대 유형별 기금지원 단가의 적정성 같은 세부적인 지표를 제시한 점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유욱 재단법인 동천 이사장은 "기금이 주거 안정이라는 당초 목적대로 쓰이고 있는지, 수요자·공급자 금융이 적절히 제공되는지, 주거 취약계층을 위해 어떤 사업을 하는지 등을 면밀히 평가하고 내용을 공개할 필요가 있는데 그렇지 못하다"면서 "과거 일부 특정 기업에 기금을 몰아줬다는 의혹이 불거진 적이 있는 데다 주택 공급을 책임질 다양한 사회적 주체를 육성하기 위해서라도 운용체계를 투명하게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 쌈짓돈인데 소수 관리가 쥐락펴락
주택도시기금은 연간 수입·지출 규모만 108조원(2026년 계획 기준), 부채를 포함한 자산 규모는 240조원(2026년 연말 추정치)이 넘는다. 정부가 운용하는 기금 68개 가운데 자산 규모로는 국민연금·공공자금관리·외국환평형기금 다음으로 네 번째로 크다. 특정한 정책 목적을 띠는 사업성 기금으로는 가장 규모가 크다.
과거 1960~1970년대 급격한 도시화에 따라 집이 부족해지면서 주택건설촉진법이 제정됐고 주택은행이 채권을 발행한 게 모태다. 1981년 국민주택기금으로 정식 출범하면서 기금의 형태를 갖췄고 2015년 주택도시기금으로 바뀌면서 도시재생 분야까지 소관 업무를 넓혔다. 융자금 회수액이나 이자수입 등 자체 재원, 국민 개개인이 부은 청약저축 납입액이나 복권기금 전입금 등으로 조성된다. 부동산 등기를 하거나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 구입하는 국민주택채권도 적잖은 비중을 차지한다. 국민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라는 얘기다.
국민 노후를 책임지는 국민연금기금의 경우 각계각층의 다양한 이해관계자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도록 지배구조가 짜인 반면 주택도시기금은 그렇지 못하다는 지적이 그간 꾸준히 제기돼 왔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으면서 정부나 공기업 중심의 당연직 위원 외에 사용자·노동자 단체, 농어업·자영업자 단체, 소비자 단체에서 위촉위원으로 참여한다.
반면 주택도시기금은 국토부 공무원에 소수 민간 전문가가 전부다. 주요 결정 자료 공시의무가 없는 데다 공개된 자료가 많지 않은 폐쇄적인 구조 탓에 잘못된 의사결정도 한참 후에 알려지는 경우가 잦다. 국토부는 지난해 당초 계획했던 정책대출 직접 융자분의 97% 정도를 불용했는데 이러한 결정도 반년이 넘은 시점에 국회 결산보고를 통해 알려졌다.
특정한 사유가 있을 경우 예산 불용이 허용된다고 하나 통상 중앙 행정부처가 분기나 반기별로 사업 진행 상황에 따라 예산 집행을 타이트하게 관리하는 것에 비춰보면 90% 이상 예산을 쓰지 않은 건 흔치 않은 일이다. 2024년과 이듬해 주택도시기금의 여유자금 고갈 우려가 갑자기 불거졌던 일 역시 신생아 출산가구에 대한 저리의 주택구입자금 대출 프로그램을 만든 영향이 크다. 당시 출산율 하락에 대처하기 위해 중장기 재정 전망 없이 추진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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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 서울시립대 교수는 "사업목적성 기금인데도 기금 운용의 안정성에 과도하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서 "수요자 비중(정책대출)을 늘려 주택가격 상승의 한 원인으로 작동해 서민 주거 안정 목표에 부합하지 못한 데다 시장·정책 금리 간 차이를 보전해주는 이차보전 지원 비중을 높여 기금의 재정 안정성도 위협받게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서민 주거 안정 차원에서 저렴한 주거공간을 대폭 늘리기 위해 주택도시기금이 적극적으로 기능해야 하는 만큼 기존 운용·평가 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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