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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고립24시]"1인분 역할 못하는 존재"…나는 28세 고립청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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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아시아경제가 만난 고립·은둔 청년들
①잘 드러나지 않는 일상고립
6개월의 은둔 생활 동희씨 이야기
가랑비 젖듯 스며든 고립이 남긴 것

편집자주퇴근 후 혼자 끼니를 때울 때, 휴대폰에 저장된 연락처는 수백개지만 힘든 일이 있어도 마음을 털어놓을 상대가 없을 때, 아프거나 돈이 없는데 도움을 요청할 수 없을 때... 아시아경제가 만난 20·30대 청년들은 이럴 때 고립감을 느꼈다고 털어놨습니다. 혹시 당신의 이야기는 아닌가요? '히키코모리', '은둔형 외톨이'와 같은 단어가 나와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왔다면 이제는 고립·은둔을 다시 제대로 바라볼 때입니다.
[청년고립24시]"1인분 역할 못하는 존재"…나는 28세 고립청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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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시간 만에 방전되는 오래된 보조배터리 같았어요. 1인분의 제 역할을 다 못하는 거죠. 보조배터리는 충전단자라도 있지, 나는 어디서 어떻게 충전하면 되는지를 몰랐어요."


한동희 씨(28·경기 의정부)가 몸에 이상이 있다고 느낀 건 2021년 초.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업무가 한 씨에게 밀려들었고 야근의 연속이었다. 집에 돌아오면 신발만 겨우 벗은 채로 현관에 쓰러져 잠들었다. 옷을 갈아입고 침대까지 갈 기력도 없었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겨우 씻고 다시 출근. 카페를 가거나 인기 드라마를 챙겨보는 게 삶의 낙이었는데 언젠가부터 그마저도 노동처럼 느껴졌다. 주말엔 시체처럼 잠만 잤다. 자취방도 엉망이 됐다. 6평짜리 좁은 원룸이라 마음먹고 정리하면 충분히 할 수 있었지만,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빨래한 옷과 입은 옷이 바닥에 뒤섞여 널브러져 있고 침대에도 옷이 가득해 몸을 반만 걸친 채로 잠들 정도였다.

직장을 그만둔 뒤 고립된 생활을 하다 재취업해 세상 밖으로 나온 청년 한동희씨가 점심시간 직장 인근 거리를 산책하고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직장을 그만둔 뒤 고립된 생활을 하다 재취업해 세상 밖으로 나온 청년 한동희씨가 점심시간 직장 인근 거리를 산책하고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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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사회적 관계가 끊기고 고립·은둔 상태로
복지부의 '2023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에 54만명의 고립·은둔 청년이 있다. 전체 청년 인구의 5% 수준이다.
고립·은둔 청년이라고 하면 대개 직업 없이 방에 틀어박혀 있는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만, 전문가들은 일상 속 고립으로 서서히 진입하는 상황 역시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학교나 직장을 다니고 가족·지인과 교류를 하지만, 정작 어려운 상황에 도움을 받거나 고민을 털어놓지 못하고 서서히 사회적 관계가 끊겨 고립·은둔 상태로 빠지는 식이다. 서울시의 2022년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6.0%가 '우울할 때 속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다'고 답했다.

한 씨도 그랬다. 부산에서 상경해 직장을 다니는 한 씨에게 "힘들면 내려오라"는 부모님의 걱정은 의지할 수 있는 기둥이 되지 못했다. 한 씨는 "위로받지 못하니 나중에는 힘들어도 잘 지내는 척만 하게 되더라"고 토로했다. 고립 청년들에게도 가족과 친구는 있다. 하지만 속을 털어놨다가 이해받지 못한 경험이 많기 때문에 쉽사리 고민을 이야기하지 못한다. 한 씨의 고립도 그렇게 시작됐다.


언젠가부터 이유도 없이 불쑥불쑥 화가 났다. 일과 관련 없는 일상 대화, 반복되는 일 처리 등 직장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사소한 일들이 분노의 이유가 되곤 했다. 스트레스를 푸는 법을 몰랐다. 한 씨는 "회사에서 소리를 지를 순 없으니까 벽을 치기 시작했다"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까 아픈데도 계속 벽만 쳤다"고 말했다.


한 씨는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이는 인생이었다. 남들은 취업난에 아르바이트도 구하기 힘들다는데 대학 졸업 후 일 년도 채 지나지 않아 바로 취업해 제 밥벌이를 했다. 고립·은둔 청년들이 취업과 대인관계 등에 의지와 노력이 부족하다는 편견 역시 한 씨에겐 해당하지 않았다. 모난 데 없이 사교적인 한 씨에게 직장 동료들은 "정말로 MBTI가 I(내향형)냐"고 되묻곤 했다.

전문가들은 삶에 대한 의욕이 강할수록 실패를 겪었을 때 괴로움을 크게 느껴 고립·은둔에 빠지기 쉽다고 말한다. 실제 고립·은둔 청년의 4명 중 3명이 한씨와 같이 대학을 졸업한 고학력자다. 사회가 생각하는 은둔형 외톨이의 의지력 없고 나약한 이미지와 정반대라는 얘기다.
고립·은둔 청년 상담을 진행해온 이미아름다운당신 상담센터의 박대령 소장은 "고립·은둔 청년들은 의지가 부족하거나 욕심이 없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전혀 아니다"라며 "너무 성공하고 싶고 멋진 사람이 되고 싶고, 잘 살고 싶은데 현실은 따라가기 힘드니까 그 괴리에서 오는 고통이 너무 큰 것"이라고 말한다. 또 다른 고립·은둔 청년 지원 단체인 공감인의 장보임 사무국장도 "노인 고립은 동정하고 도와줘야 하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반면 고립 청년들을 향해서는 '왜 저러고 있어'라는 비판이 훨씬 많다"며 "부모님도 좋은 뜻에서 도와주고 싶은, 답답한 마음에서 하는 말이지만 당사자에겐 그것조차 압박으로 다가온다"고 설명했다.
늪 같은 침대, 벗어날 힘조차 없던 그때로 돌아갈까 무서워요

결국 한 씨는 일 년 만에 퇴사를 택했다. 6개월의 이직 준비 기간 동안 한 씨의 삶은 은둔에 가까웠다. 침대는 늪과 같았다. 잠시 쉬려고 누우면 파묻혀 일어나기 힘들었다. 목, 허리 관절을 누가 뽑는 것처럼 세게 잡아당기고, 몸을 위에서 세게 짓누르는 느낌이었다. 직장생활에 지쳐 진이 빠진 한 씨에게 위아래서 잡아당기는 중력을 이기고 일어설 기력은 없었다. 어릴 때부터 늦잠이라곤 자본 적 없었던 한 씨는 이때 처음으로 하루를 잠으로 다 보내는 시절을 겪었다고 했다.

"오늘은 나가야지, 나가서 죽치고 있더라도 나가야지 싶어서 씻고 옷도 갈아입었는데 그 행위 자체가 너무 피곤한 거예요. 그래서 그 상태로 다시 침대에 누워요. 그러다 보면 해가 져 또 못 나가는 거죠. 해가 지면 내가 보호받을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겁났어요. 내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날 찾는 사람이 없겠다 싶었어요. '만약 발견이 되더라도 얼마나 지나야 발견이 될까'라는 생각도 했어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일주일에 하루도 못 나간 적이 많아요."


직장을 그만둔 뒤 고립된 생활을 하다 재취업해 세상 밖으로 나온 청년 한동희씨가 카페 창 밖을 내다보며 생각에 잠겨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직장을 그만둔 뒤 고립된 생활을 하다 재취업해 세상 밖으로 나온 청년 한동희씨가 카페 창 밖을 내다보며 생각에 잠겨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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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밤이 되면 일어나 방을 쓸고 닦았다. 외출도 하지 않는데 매일같이 옷을 빨고 갰다. 욕실은 락스 칠까지 해가며 박박 닦았다. 손이 계속 건조해서 틀 정도였다. 이렇게라도 몸을 혹사해야 잡생각 없이 기절하듯 잠들 수 있어서였다. 한 씨는 이때 자신의 행동이 일종의 생존본능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어쩌면 저 스스로 살고 싶어서 했던 행동이었던 것 같기도 해요."


한 씨는 결국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옆에 도와줄 사람이 있고 고립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꼈고 무너졌던 자존감도 회복할 수 있었다.


현재 한 씨는 재취업에 성공해 다시 직장을 다니고 있다. 2022년 4월부터 시작한 직장생활은 벌써 3년 차에 접어들었다. 한 씨는 현재 자신이 중요한 사람, 하나의 조직에서 필요한 존재라는 것에 상당한 삶의 만족감을 느낀다고 했다. 힘들 때 극복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도 키우는 중이다. 그는 "일이 많아서 스트레스 받을 때도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내 존재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며 "내가 필요한 존재라는 생각에 주변에서 야근하지 말라고 해도 스스로 나서서 할 정도"라고 바뀐 삶의 태도에 관해 설명했다.


다만 아직도 한 씨에게는 '언제든 다시 고립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두려움이 남아있다. 월 1~2회 정신과 상담을 병행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한 씨는 "여전히 언제 멈출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있기 때문에 내가 마련한 최소한의 장치"라며 "사람이라면 누구나, 언제든 힘들 수 있다"고 말했다.

각 지방자치단체는 고립·은둔 기간이 6개월 이상인 청년만을 정책적으로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본다. 일상에서 느끼는 고립감이 발전해 은둔 단계로 넘어갈 수 있지만 한 씨와 같은 위기 징후 혹은 전조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는 보호 대상에서 빠진다. 결국 스스로 고립 전 징후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한 씨 처럼 스스로 정신과를 찾아 탈출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경우다.정신과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인식이 있는 대한민국에서 고립·은둔을 겪는 청년들이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고 정신건강의학과의 문을 두드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은둔 청년들 사이에선 병원 방문을 권유했다는 이유로 가족과 갈등을 겪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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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 기자 phj032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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