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2013]저 말을 다 지키면, 경제가 거덜날 판인데…

복지,경제민주화 앞세워 당선
새누리, 약속깨기 작업 시동
담당부처 재원마련 방안 한숨만


[WITH2013]저 말을 다 지키면, 경제가 거덜날 판인데…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공약 이행도 좋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대형 예산공약들에 대해서는 출구전략도 같이 생각하셨으면 한다."(새누리당 심재철 최고위원. 지난 14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대선 공약에서 기초노령연금을 '2013년부터' 20만원씩 지급한다고 한 적이 없고, 기초노령연금을 65세 이상 노인 '전부'에게 지급한다고 한 적이 없다."(새누리당 나성린 정책위부의장. 같은날 MBC 라디오 방송에서)

대선에서 승리한 새누리당의 지도부와 정책라인에서 최근에 들려오는 얘기다. 기초노령연금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은 '2013년 관련 법을 개정해, 기초연금 도입 즉시 65세 이상 모든 어르신과 중증장애인에게 현재 기초노령연금의 2배 수준(약 20만원)으로 인상해 지급하겠다'는 것이었다. 심 최고위원과 나 부의장의 의견은 '박 당선인이 대선 과정에서 내건 복지 공약을 모두 지키는 건 무리이니 일부 공약은 없던 일로 하자'로 요약된다.

복지는 경제민주화와 더불어 이번 대선의 양대 의제였고 박 당선인은 이를 실현하겠다는 대(對)국민 약속을 토대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약속 어기기' 작업이 여당 상층부로부터 서서히 시작되고 있는 셈이다. 박 당선인의 복지공약이 옳은지 그른지를 떠나, '정직'이라는 가치를 무시하는 정치권의 행태는 이번에도 반복되고 있다.

◆정직과 거리 먼 약속들…이것이 신뢰? = 박 당선인과 새누리당은 우리 사회가 구축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회적 자산으로 신뢰를 꼽은 바 있다.

사회적 신뢰를 쌓는 첫 걸음은 정치권을 포함한 사회 지도층이 정직해지는 것이다. 복지를 약속해 선거에서 이긴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발을 빼는 행태는 정직과 거리가 멀다.

애초부터 약속의 수위를 조절했어야 한다는 때늦은 지적이 잇따르는 이유다. 박 당선인의 복지 공약이 애물단지가 될 것이란 지적은 대선 과정에서 꾸준히 제기됐었다.

특히 박 당선인과 새누리당이 증세에는 반대하면서 복지를 확대하겠다는 것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컸다.

황성현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해 7월 국회 연구모임 '국가재정연구포럼' 창립총회에 토론자로 나와 "한편으로는 복지 확대를 얘기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세 부담 증가에 대해 솔직하지 못한 태도를 보이는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며 "이 점에 있어서는 새누리당의 문제가 더 커 보인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 "재정 낭비만 줄여도 (증세 없이) 복지의 개선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없는 '도깨비 방망이'를 가지지 않은 한, 결국 선진국과의 격차를 줄이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일갈했다.

황 교수는 그러면서 박 당선인과 새누리당의 복지구상을 '저부담-저혜택' 기조라고 분석했다. 구호와 실질에 큰 차이가 있을 것이란 경고였다.

박 당선인은 대선 이후에도 증세에 반대하고 있으며, 탈루되는 세금을 잘 걷고 재정 낭비를 줄이면 복지 재원을 조달하는 게 가능하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계산대로 될까?…벌써 불거지는 회의론 = 박 당선인이 집권 5년 동안 복지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조달하겠다고 약속한 돈은 적게 잡아도 약 120조원, 많게는 약 130조원에 이르는데 이마저도 과소계상됐다는 지적과 우려가 끊이질 않는다.

나성린 부의장이 문구의 엄밀함을 지적해가며 재고해야 한다고 말한 기초노령연금이 대표적이다. 박 당선인 측은 이를 위해 향후 5년 동안 약 14조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연간 최소 8조원이 필요하며, 필요 액수는 해가 갈수록 커질 것이란 분석이 뒤따르고 있다. 급속하게 진행되는 노령화 때문이다.

정부가 불필요하게 지출하던 돈의 규모를 줄이겠다는 박 당선인의 발상에 대해서도 우려 섞인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오건호 공동운영위원장은 "우리나라의 경우 재정 규모 자체가 비교적 적고 인건비 등 '경직성 경비'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조정해서 돈을 조달할 여지가 작다"고 설명했다.

이런 탓에 "전격적으로 증세를 논의하지 않는 한 상당수 복지공약은 유야무야되거나 사실상 폐기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 새누리당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주변에서 꾸준히 흘러나오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정부 부처들의 인수위 업무보고 과정에서 '대체 어떻게 재원을 마련하라는 것이냐'는 부처 쪽의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원인은 진정성 아닌 공학이 지배하는 정치 = 박 당선인과 새누리당이 이처럼 실행이 간단치 않은 약속을 대선 과정에서 남발한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사회의 균열구조나 이념적ㆍ정책적 차별성보다는 선거 공학이 더 크게 작용하는 부조리가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설명한다. 정직한 약속보다는 장밋빛 거짓말이 유용하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공학은 중위투표자이론이다.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중요한 선거일수록 선거를 앞두고 보수진영은 좌로, 진보진영은 우로 이동하는 게 유리하다는 중위투표자이론이 강하게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정책적 지향이나 이념과 관계 없이 상대 진영의 지지자들을 최대한 많이 포섭하려는 노림수다. 윤 교수는 또 "이 같은 공학으로 살펴보면 대선 과정에서 민주당이 새누리당에 끌려갔다"고 말했다. 정책이 아닌 전략에 있어서 새누리당이 앞섰다는 것이다.

이를 바꿔 말하면 지키지 못 할, 또는 쉽게 지키기 어려운 약속을 박 당선인과 새누리당이 그만큼 많이 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 선봉에 진보진영의 화두인 복지가 서 있었던 셈이다.

선진국에 비해 대중의 계급의식이 약한 탓에 건강한 균열구조가 확립되지 않았고 이에 따라 정치권이 '성장이냐 복지냐'로 솔직하게 경쟁하기를 꺼리는 우리 사회의 특성이 배경이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정책적ㆍ이념적 쟁점이 옅어지는 포괄정당화가 또 하나의 '틈'으로 작용한다는 분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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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기자 hjn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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