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 크로니클①] 시체 찾으러 명동 뒤진 기자 말하길…[괴담 크로니클②] '살인마 오원춘' 백년전에도 살았다[괴담 크로니클③]"아내 애인 되달라"던 남편 결국…[괴담 크로니클④] 버스안 '개념 남녀' 불편했던 이유는?[괴담 크로니클⑤] 아이스케키 장수의 역습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2009)에선 신세경이 '가정부'로 나온다. 극중 신세경은 집주인 이순재와 그의 딸 오현경의 총애를 받는 동시에 사위 정보석과는 은근한 신경전을 벌이는 적대 관계를 유지한다. 사실 이런 설정은 60~70년대에 쏟아졌던 '가정부' 공포영화의 '비틀어보기'란 사실을 알만한 이들은 안다. 이들 영화에서 가정부는 신세경과 정반대의 상황에 직면한다. 주인집 남성들은 음흉한 눈빛으로 자신을 노리고, 마나님은 질투가 섞인 매서운 눈초리로 자신을 감시한다.
지금이야 가사도우미라는 말로 순화해서 쓰이지만 50년전만 해도 가정부, 식모(食母)라는 말로 가사를 전담하는 여성들을 통칭했다. 60년대 시골에선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올라오는 인파들이 줄을 이었다. 서울역에서 올라온 처녀들은 공장직원으로 식모로 혹은 사창가로 발길을 향했다. 한창 아름다울 시기인 18살의 처녀, 순박하고 집주인의 말을 잘 듣는 그녀들은 부잣집 사장님에게 치명적 유혹이 됐고 마나님에겐 경계해야 할 대상이었다. 안락한 우리 집에 혹시라도 위해를 가할까, 식모는 집에 들어와 같이 산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공포의 대상이었다. 60~70년대 한국 공포영화에는 식모를 소재로한 영화가 다수 있다. 국내 공포영화의 한획을 그은 '월하의 공동묘지(1967)'도 식모가 악당으로 나오는 대표적인 예다. 자신을 거둬준 주인 월향이 몸져눕자 병수발을 들러온 식모 난주(도금봉)는 그녀에게 독을 탄 약을 매일 먹인다. 난주는 월향이 나으면 자신이 쫓겨날까 두려웠고 자신이 사랑하는 남성이 월향과 결혼한것도 못마땅했다. 결국 나중에 월향이 자살을 하자 난주는 집주인 행세를 하며 월향의 남편이자 자신이 흠모했던 남성마저 없애버릴 궁리를 한다.
김기영 감독의 영화 '하녀' 시리즈(하녀, 화녀, 화녀82) 역시 치명적으로 아름다운 식모를 집안에 들이면서 깨어지는 가정의 평온을 그리고 있다. 오리지널 '하녀'는 임상수 감독의 리메이크작으로도 많이 알려졌으니 비슷한 내용의 영화 '화녀(1971)'를 보자. 화녀에선 작곡가인 바깥양반이 새로들인 식모 명자를 겁탈하고 임신까지 시키게 된다. 임신 사실을 알게된 아내는 명자의 아기를 강제로 낙태시키고 명자는 복수심에 전가족을 '쥐약'으로 몰살하려 한다.
배우 김영애의 부잣집 마나님 연기가 일품이었던 공포영화 '깊은밤 갑자기(1981)'. 남편이 지방 출장을 갔다 폐가에서 데려온 무당의 딸, 미옥(이기선 분)을 새로운 식모로 들이게 된다. 김영애는 육체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미옥과 남편의 사이를 의심하게 되고 급기야 의부증이 극에 달해 미옥을 죽이려한다. 미옥은 김영애가 휘두르는 도끼를 피해 도망가다 실족사를 하게 되고, 김영애는 이후 미옥의 환영에 사로잡혀 미쳐버리게 된다.현실에서도 영화속처럼 악녀가 존재했다. 1963년 '깜찍한 17세 식모, 주인집에 협박장'이란 신문 기사는 30대 회사원 집에서 일하던 식모 홍모(17)양을 공갈혐의로 구속했다는 내용을 실었다. 홍양은 가난한 부모에게 돈을 부치기 위해 주인댁에 "모월 모일 저녁 7시에 식모 홍양을 시켜 현금 1만원을 신설동 동보극장 앞으로 보내라. 안그러면 전가족을 죽인다"는 협박장을 보냈다고 한다. 어딘가 어설프고 서글픈 악녀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식모는 '희생양'이었다. 집보던 식모가 강도에게 살해됐다는 소식은 하루가 멀다하고 신문 지면을 장식했다. 생계형 범죄는 없는 자들끼리 죽고 죽이는 비극을 만들었다.
이같은 두려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60년대 교양있는 서울 중산층의 '식모 사랑'은 대단했다. 당시 신문기사를 참조하자면 직업소개소에 식모를 찾는 의뢰가 하루에도 30건씩 잇따르는 반면 식모를 하겠다고 찾아오는 사람 수는 그 절반에 불과했다. 심지어는 일 잘하는 남의 집 식모를 꾀어다 쓰는 경우도 있었다. 시쳇말로 이를 '식모유괴'라고 불렀다고 한다.
박충훈 기자 parkjovi@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