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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크로니클④] 버스안 '개념 남녀' 불편했던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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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만식 '괴담'(1939년)이 실린 잡지(출처 : 국립중앙도서관)

채만식 '괴담'(1939년)이 실린 잡지(출처 : 국립중앙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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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는 실제라곤 도무지 믿기 어려운 '괴담' 기사가 가끔 등장했다. 팩트를 중시하는 저널리즘이 설익은 탓에 입으로 떠도는 괴담을 재구성한 기사가 등장했던 것이다. 1회에서 언급했다시피 직접 소문의 진상을 확인하기 위해 7월의 폭염을 누빈 '열혈 기자(?)'도 있었다.
1919년 매일신문에는 '소설같은 괴담'이란 기사가 실렸다. 머슴이 주인아씨와 정을 통해 같이 도망가자고 했으나 결국엔 주인에게 몰매를 맞고 뒤주안에 갇혔고 그 안에서 나중에 뱀이 나왔다는 이야기다. 이 기사는 떡 하니 '사회'면에 실렸다.

일제는 대중의 현실 인식을 없애는 문화를 조선땅에 퍼뜨렸다. 그리하여 달콤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로맨틱 코미디'가 모던보이, 모던걸에게 인기를 끌었고, 괴담·야담류는 '진실을 알기 힘들었던' 눈먼 대중의 관심을 샀다.

이는 해당 시기에 나왔던 자료수로 입증된다. 국립중앙도서관 검색 서비스에서 '괴담'을 검색하면 1901~1944년도에 해당 키워드를 언급한 자료가 128건에 달한다. 이는 1945~1990년도(15건)에 비해 8배나 많다.
이름난 소설가·시인들도 괴담류의 글을 써달라고 신문·잡지사의 청탁을 받았다. '탁류', '태평천하' 등의 시대소설로 유명한 채만식은 한 잡지사의 청탁을 받아 단편 소설 '괴담'을 지었다.

내용은 이렇다. 청년 4~5명이 한 겨울날 떡을 쪄놓고 막 먹을려던 찰나 거리의 행인들이 방에 들어온다. 갓찐 뜨끈한 떡을 벽장에 잠시 숨겨두고 행인을 맞은 이 청년들은 온통 속으론 떡 생각 뿐이다.

그러다 마침내 행인이 돌아갔고 한 청년이 급히 먼저 들어와 벽장문을 열어보니 세상에.. 정체를 알수 없는 백발 노인이 떡을 뚝뚝 떼어 먹고 있는 게 아닌가?

너무 놀란 청년은 기절했다. 나중에 다른 청년들이 확인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떡 한쪽이 크게 떼어져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처음 벽장 속 노인을 봤던 청년은 그 후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세상을 뜨고 말았다. 채만식은 이 이야기를 자신의 고향에서 들은 것이라 전하며 나름의 사실성을 부여한다.

시인 정지용은 1939년 '야간뻐스안의 기담'이라는 제목의 기묘한 이야기를 신문에 기고했다. 그는 자신이 실제로 겪었던 일이라며 깊은 밤 버스안에서 생겼던 일들을 이야기한다.

피로와 술기운에 쩔어 집으로 가는 만원 버스를 타기 일쑤인데, 어느날 버스에 오르니 자리 하나가 비어있었다는 것. 빈 자리 양쪽에 덩치큰 젊은이들이 버티고 있어 승객들이 그들 틈에 감히 비집고 들어가 앉을 생각을 못했기 때문이다.

이상한 일은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버스에 오르면 마치 자신을 기다렸다는 듯이 그 자리가 비어있다는 것이다.

정지용은 자리가 빈 이유에 대해 온갖 상상을 하게 된다. '이 자리가 나와 무슨 숙명적인 인연이 있는건가? 아니면 누가 거기 앉았다 죽은 자리인가? 그것도 아니면 양복 궁둥이를 더럽힐 만한 뭐가 묻었나?'라며 의심해봤지만 자리에는 의심될만한 흔적이라곤 없었다.

하도 같은 일이 반복되니 나중에는 아예 버스에 오르자 자연스럽게 "무슨 인연이 있나봐"라며 좌석에 앉게 된다. 여러밤을 연달아 앉게 되니 이젠 내몸에 자리가 맞춤으로 제작된 듯 길이 들었다.

더욱 괴상한 노릇은 자리 양옆에 앉는 사람들이 늘 같은 사람처럼 느껴졌다는 사실이다. 매일같이 스무살 안팎의 남녀 한쌍이 현란한 옷을 입고 좌우로 앉아 있었다.

정지용은 "청춘과 유행에 대한 예리한 판별력을 상실한 나이가 되어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밤마다 나타나는 그들 청춘 한쌍을 꼭 한 사람들로 여길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지용은 그들과 말을 섞을 일은 없었다. 어쩐지 그들이 불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정지용은 "양 옆에 그들은 너무 젊고 어여뻤던 건 아닌지, 그들에게 풍기는 극상품 비누냄새같은 청춘의 체취에 내가 견딜수 없었던 건 아니었는지, 아니면 아예 그 자리가 내가 비집고 들어가 앉을 자리가 아예 아니었던 건 아닐지"라고 불편함의 원인을 분석한다.

하지만 그는 곧 "늙은 사람에게 아랫목을 비워 놓은 것이나 비슷한 게 아닐까"라는 긍정적 해석을 내리며 글을 맺는다.

한편 1930년대에는 '야담'이 전국적으로 유행했다. 여름밤에는 매일신문, 조선일보 등 신문사 주최로 열리는 한여름밤의 야담대회가 줄을 이었다.

야담대회는 한사람의 이야기꾼이 관객 앞에서 각종 이야기를 펼쳐놓는 일종의 원맨쇼로 일본의 이야기공연 라쿠고(樂語), 전쟁무용담 고단(講談)의 영향을 받았다.

라쿠고가 기모노를 입고 정좌해서 이야기를 한다면 야담꾼들은 양복에 '맥고모자(밀짚모자)'를 쓰고 관객앞에 서는게 달랐다.

야담꾼들이 늘어놓는 이야기들은 조선 역사속에 숨겨진 야사와 함께 괴기, 로맨스 등 주제가 꽤 다양했다.

이 야담꾼들은 18~19세기 조선에서 남이 지은 소설을 낭독해서 먹고 살았던 전기수와는 또 조금 다르다. 실제로 야담 소설을 직접 문예지에 발표하거나 라디오 드라마에 극본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았다.



박충훈 기자 parkjo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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