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교의 '그대의 들'
김수영이 하찮은 일에 분개하고, 거대한 것들에 대해 항거하지 못하는 소시민적인 일상을 비판하는 그 지점에서, 강은교는 하찮은 일에 분개하지 않으면 큰 것에도 분개할 수 없다는 논리를 내놓는다. 김수영의 시절엔 하찮은 일에 성질 내는 것만 반성하면 됐지만, 권력적 폭압과 정치적인 감시를 겪으면서부터는 아예 하찮은 일에도 분노하지 않는 '불감증 인간'이 돼있는 현실과 대면한다. 1980년대와 1990년대를 살아낸 시인의 내면으로, 김수영의 문제의식이 업데이트된 셈이다.
강은교의 시가 마음을 흔드는 지점은, 하찮은 것들로 치부돼온 존재를 의미있게 바라보는 그 눈길이다. 세상이 하찮은 것과 하찮지 않은 것으로 양분되는 투박함에서 벗어나, 하찮은 것 또한 가만히 들여다보면 하찮지 않다는, 하찮음의 재발견이 이 시를 동요시킨다. 하찮은 것은 밥알이며 먼지이며 핏방울이다. 하찮은 것이 죽어도 피비린내는 난다. 파리나 민들레처럼 말이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시인)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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