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대륙 나라가 아닌 곳에서 열리고 있는 2015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8일째 경기에서 대회 개막 뒤 가장 치열한 경기가 펼쳐졌다. 지난 17일 오후 5만 여명의 관중이 들어찬 브리즈번 스타디움에서 열린 조별 리그 A조 마지막 날 경기에서 한국은 국가 대표 신예 이정협의 절묘한 결승 골에 힘입어 개최국 호주를 1-0으로 누르고 조 1위로 8강에 올랐다. 미리 보는 결승전 같은 경기였다.
8강전 이후 진행 상황에 따라 두 나라는 결승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 8강전 이후를 의식한 호주는 베테랑 주전 공격수 팀 케이힐과 좌우 날개인 로비 크루스와 매튜 레키를 선발 명단에서 뺐다. 그러나 호주는 후반 들어 팀 케이힐과 로비 크루스 등 공격수를 투입하며 무승부 또는 역전을 노렸다. 그러나 호주의 의도는 한국 문지기 김현진의 신들린 듯한 방어로 물거품이 됐다. 조 1위 싸움이라기보다는 서로 상대의 기를 꺾겠다는 의도가 그대로 드러난 경기에서 한국은 값진 승리를 거뒀다.
사커루가 한국 축구 팬들에게 존재감을 알린 건 1960년대 중반 북한에 의해서다. 북한이 첫 A매치를 가진 건 1959년 10월의 일이다. 상대는 중국이었고 1-0으로 이겼다. 그러나 이 무렵 북한 축구는 국제무대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런 북한이 1965년 11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벌어진 1966년 제8회 잉글랜드 월드컵 아시아?아프리카·오세아니아 지역 예선에서 호주를 6-1, 3-1로 연파하고 본선 티켓을 거머쥐었다.
국내 축구 관계자들이 깜짝 놀랄 소식이었다. 본선에서 이탈리아를 1-0으로 꺾고 8강에 진출하는 파란을 일으키는 북한은 호주와 2연전에서 이탈리아전 결승골의 주인공 박두익과 조별 리그 칠레전 동점골과 포르투갈과 8강전에서 선제골을 넣은 박성진 등이 맹활약했다.
호주의 A 매치 1-6 패배는 1955년 9월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홈경기에서 0-8로 진 것을 비롯해 몇 손가락에 안에 드는 대패 기록이다. 한국을 따돌리고 처음으로 본선에 나선 1974년 서독 월드컵 조별 리그 A조에서 호주는 동독에 0-2, 서독에 0-3으로 졌지만 칠레와 0-0으로 비기는 등 세계적인 수준의 나라들에 크게 뒤지지 않는 경기 내용을 보였다. 그런 호주를 북한이 어린아이 손목 비틀 듯이 이긴 것이다.
그 무렵 한국은 호주에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1967년 11월 사이공(오늘날의 호치민)에서 열린 베트남독립기념배대회 결승에서 2-3으로 진데 이어 1968년 8월에는 1960년대 동남아시아 지역 최고의 국제 축구 대회였던 메르데카배대회(말레이시아)에서 0-3으로 완패했다.
더블리그로 진행된 1차 예선에서 한국은 일본에는 2-0, 2-2로 앞섰으나 호주와 1차전에서 1-2로 진 데 이어 2차전에서 1-1로 비겨 2차 예선 출전권을 얻지 못했다. 호주는 2차 예선에서 로디지아를 1-1, 0-0, 3-1로 따돌렸으나 최종 예선에서 이스라엘에 1-1, 0-1로 밀려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한마디로 1960년대 호주는 큰 체격과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하는 유럽식 축구로 한국으로서는 넘기 어려운 벽이었다. 그 무렵 호주와 경기를 앞두고 나오는 예상 기사에는 예외 없이 두 나라 선수들의 평균 키와 몸무게가 실렸다. 제공권에서 밀릴 수 있다는 전망이 꽤 큰 비중을 차지하기도 했다.
호주는 1970년대에도 한국을 여러 차례 좌절하게 만들었다. 1974년 제 10회 서독 월드컵을 앞두고 한국은 1970년에 제 7회 아시아경기대회(방콕)와 메르데카배, 킹스컵(태국) 우승을 휩쓸며 기세를 올렸고 그해 에우제비오와 뒷날 한국 대표팀 감독이 되는 움베르투 쿠엘류가 이끄는 포르투갈의 명문 클럽 벤피카, 1972년에는 펠레의 산토스 클럽과 친선경기를 갖는 등 실력 향상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1973년 10월과 11월 시드니와 서울을 오가며 벌어진 서독 월드컵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최종 예선에서 0-0, 2-2로 비긴 뒤 11월 13일 홍콩에서 벌어진 3차전에서 0-1로 져 본선 문턱에서 주저앉았다. 서울운동장에서 벌어진 홈 경기에서는 전반 15분 김재한, 27분 고재욱의 연속 골로 2-0으로 앞서며 월드컵 본선에 바짝 다가서는 듯했지만 전반 29분 불제비치에게 추격 골, 후반 3분 라르츠에게 동점 골을 내줬으니 땅을 칠 노릇이었다.
한국은 이후 1978년 제 11회 아르헨티나 월드컵 예선에서도 호주와 만나 1무 1패(0-0 1-2)를 기록하는 등 1970년대에 7차례 만나 4무 3패로 일방적으로 뒤졌다. 이후 1987년 6월 대통령배국제대회 결승에서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5-4로 이겨 우승하기까지 열 차례 A매치에서 한 차례도 이기지 못했다. 그리고 이 경기도 기록으로는 무승부로 처리됐고 한국이 A매치에서 호주를 처음으로 이긴 건 1990년대에 들어서서다.
1990년 9월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친선 A매치에서 변병주의 결승골에 힘입어 실질적으로 첫 승을 거둔 이후 지난 17일 경기까지 한국은 1990년대 이후 호주와 7승4무3패의 상대 전적을 이어 가고 있다. 2000년대 이후에는 4승2무1패다.
17일 경기는 참으로 기분 좋은 승리였다.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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