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위주의 주거, 갈수록 높아만 가는 전세가격, 세입자들의 의식구조 전환 등으로 집주인과 세입자간 갈등이 커져가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아파트단지이며 기사의 내용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음.
[아시아경제 권용민 기자] #지난 2월, 재개발 예정 아파트에 입주한 정모(34)씨는 입주하자마자 온수가 나오지 않아 집주인에게 보일러 수리를 요청했다. 하지만 집주인은 “고장 내놓고 왜 나보고 수리 하라는 거냐”며 화만 낼 뿐 수리해주기를 거부했다. 정씨는 입주하자마자 노후 보일러 고장 책임을 세입자에게 돌린 집주인에게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방법이 없어 화를 삭이고 있다.
#반지하 전세로 입주한지 2주된 김모(31)씨도 비슷한 경우다. 싱크대에서 물이 새는가 하면 세면대와 변기 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집주인은 “2년 동안 내가 살면서 곰팡이 한번 핀 적이 없다”며 오히려 세입자의 부주의로 벽지가 곰팡이 얼룩이 졌으니 보상하라는 답변을 했다.
더욱이 재개발과 재건축 대상 주택에 세들어 사는 경우엔 노후된 시설로 인한 신경전이 더욱 심하다. 어차피 헐어야 할 주택에 돈 쓰기 아까워 하는 집주인과 하루를 살아도 정상적인 집에 살고 싶은 세입자간의 갈등이 부딪히는 것이다. 갈등을 겪고 있는 한 세입자는 “세를 놨으면 단 하루를 살아도 사람이 살게는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하소연 한다.
하지만 재개발 예정 아파트 소유자 박모(63)씨의 견해는 다르다. 시설 노후로 인한 고장은 집주인이 수리를 해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는 세입자의 질문에 “곧 허물 집인데 왜 돈을 들이느냐?”고 반문했다.
서울시는 집주인과 세입자간의 법적 소송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간이분쟁조정제도’를 작년 7월 도입했다. 하지만 ‘간이분쟁조정제도’가 실직적으로 갈등을 해소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분쟁조정은 집주인과 세입자 양 당사자 모두 참여의사를 밝힌 경우에만 가능하다”며 “보통은 집주인들이 참여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분쟁조정을 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분쟁조정 사무실에는 하루 평균 200건에 달하는 문의전화가 몰려오고 이중 90% 이상은 누수, 보일러 수리관련 문의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집주인-세입자 양측 참석 하에 합의된 건수는 제도 도입 이후 총 21건에 불과하다.
간이분쟁조정제도는 변호사 입회 하에 양측이 합의를 볼 수 있도록 유도해주는 제도다. 분쟁들은 주로 ‘일정부분 수리비 부담’, ‘이사비용 또는 부동산중개료 반씩 부담’ 등의 방향으로 합의된다.
부동산 중개업계 관계자는 “집주인과 세입자간에는 항상 갈등을 할 수밖에는 없다”면서 “합리적으로 해결하기가 힘든 때는 중개업소의 도움을 받거나 서울시의 분쟁조정제도 등을 활용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용민 기자 festy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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