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클빵' '디지몬빵' '케로로빵' 등이 뒤이어
2000년대는 베이글이 트렌드 주도
토핑 형태따라 가격 8500원까지 치솟아
2025년 06월 17일(화)
허미담기자
입력2025.06.16 14:42
수정2025.06.16 16:21
04분 01초 소요
1999년 500원이던 국찐이빵부터 2025년 8500원 가격표를 달아도 불티나게 팔리는 베이글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바뀌는 소비자들의 입맛에 따라 유행하는 빵 종류가 달라지면서 빵 가격은 계속 상승했다. 소비자들은 새로운 빵에 열광했고, 신드롬을 일으킨 빵은 가격이 비싸더라도 구매를 위해 '오픈런'을 주저하지 않는 젊은층의 새로운 소비 문화를 견인했다.
2000년대 초반 대중적 인기가 많았던 빵은 삼립식품(현 SPC삼립)의 양산빵 '국찐이빵'이다. 1999년 출시된 이 제품은 빵과 함께 당시 인기 개그맨 김국진을 캐릭터로 만든 스티커(띠부씰)가 담겨 어린이들 사이에서 인기였다. 출시 가격은 500원이었으며, 하루에 60만~70만개씩 판매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1997년 외환위기로 경영에 어려움이 있었던 삼립식품을 되살린 빵으로도 유명하다. 국찐이빵 흥행에 힘입어 2000년에는 그룹 핑클을 모델로 한 '핑클빵', 2001년에는 '디지몬빵', 2006년에는 '케로로빵' 등 띠부씰을 활용한 양산빵이 연이어 출시됐다.
2010년대 들어서는 독일 로텐부르크의 전통과자 '슈니발렌'이 인기를 끌었다. 슈니발렌은 동그란 모양의 반죽을 기름에 튀긴 뒤 나무망치로 깨 먹는 방식이 특징인 디저트다. 2012년 8월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서 처음 선보인 슈니발렌은 '깨 먹는 재미'로 입소문을 타며 일평균 1000만원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개당 3500원인 가격을 고려하면 하루 3000개 가까이 팔린 셈이다. 당시 '강남 과자'라는 별칭까지 붙었던 슈니발렌은 이후 약 1년 만에 전국 주요 도시에 60여개 매장이 생겼고, 누적 매출은 200억원을 돌파했다.
2016년엔 '대만식 대왕 카스테라'가 전국을 휩쓸었다. 일반 카스테라보다 부드럽고 촉촉한 식감을 앞세워 주목받았고, 여럿이 나눠 먹을 수 있을 만큼 큰 크기임에도 6000~7000원대 가격이라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좋은 디저트'로 각광받았다. 당시 이태원 경리단길과 홍대 등 주요 상권을 비롯해 백화점과 시장 등 전국 어디서나 대만 카스테라 프랜차이즈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방송사 고발 프로그램을 통해 '식용유 범벅 카스테라'라는 오명을 얻으면서 이미지가 급격히 추락했다. 여기에 조류인플루엔자(AI) 여파로 계란값까지 급등하자 매장들은 줄줄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2020년대는 '베이글'이 제빵업계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2021년 9월 서울 안국동에 문을 연 '런던베이글뮤지엄'이 젊은층 사이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2025년 현재까지 베이글 열풍이 계속되고 있다. 이국적인 인테리어와 개성 있는 베이글로 주목받은 이곳은 '오픈런(개점 전 줄서기) 성지'로 부상했고, 잠실·수원·제주 등 출점 때마다 긴 대기 줄이 이어졌다. 기본 베이글 가격은 3800원부터 시작하지만 토핑과 형태에 따라 베이글 가격이 8500원까지 치솟는다. 함께 파는 샌드위치는 7500~1만4800원 수준. 프랜차이즈 베이커리와 편의점 등도 베이글 인기에 발맞춰 관련 제품을 잇달아 출시하며 베이글 열풍에 동참하고 있다.
한국의 빵값은 전 세계 8위다. 식빵 한 덩이의 평균 가격이 4000원대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한국보다 높은 영국·캐나다·스웨덴 등 주요 선진국보다도 비싼 수준이다.
14일 국가·도시 통계비교 사이트 넘베오에 따르면 지난 11일 기준 한국의 식빵 한 덩이(500g) 가격은 3.06달러(약 4200원)로, 전 세계 124개국 중 8위를 차지했다. 한국보다 빵값이 높은 나라로는 ▲아이슬란드(4.07달러) ▲스위스(3.70달러) ▲미국(3.64달러) ▲덴마크(3.43달러) ▲노르웨이(3.41달러) ▲룩셈부르크(3.19달러) ▲코스타리카(3.14달러) 등 7개국뿐이었다.
반면 ▲스웨덴(3.01달러) ▲오스트리아(2.86달러) ▲캐나다(2.71달러) 등의 식빵 가격은 한국보다 낮았다. 가장 저렴한 국가는 식빵 한 덩이 가격이 0.16달러(약 220원)인 알제리다.
한국의 빵값이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비싸다는 점은 식빵 외 다른 품목에서도 비교 가능하다. 소금빵의 원조로 알려진 일본 베이커리 '팡 메종'에서는 현재 소금빵을 개당 120엔(약 1150원)에 판매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파리바게뜨가 2800원에 판매 중이며, 대기업 베이커리 기준 대체로 3000원 안팎의 가격대가 형성돼 있다. 특히 개인이 운영하는 입소문 난 매장에서는 소금빵 가격이 4000원대 후반에서 5000원대 초반까지 치솟는다.
베이글도 상황은 마찬가지. 뉴욕 3대 베이글로 꼽히는 '에사베이글'에서 베이글 개당 가격은 2.05달러(약 2800원)지만, 국내 베이글 전문점에서는 대체로 4000원 안팎이다. 프랑스 파리의 바게트빵 평균 가격 또한 개당 1.19유로(약 1800원)로 3000원대 후반 가격을 형성하고 있는 한국 바게트빵과 차이가 크다. 프레첼의 경우 독일 대형 체인 빵집에서는 1.2유로(약 1800원)에, 한국에서는 3000~4000원대에 판매되고 있다.
최지웅 대한제과협회 사무총장은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한국의 빵값이 유독 비싼 이유에 대해 "국내 소비자는 미국이나 유럽과는 달리 토핑이 풍부한 제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며 "빵값은 어떤 재료를 썼는지, 중량이 얼마나 되는지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러한 선호도 차이로 재료비가 많이 들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또 "밀과 같은 주요 원료를 수입에 의존하는 점도 빵값에 영향을 미친다"면서 "이를 해소하기 위해 농림축산식품부와 함께 가루쌀을 활용한 제과·제빵 신메뉴 품평회를 여는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 제빵 시장 현황과 거래 구조, 가격 상승 요인 등을 면밀하게 분석해 유통 구조를 개선하는 방안을 마련하겠습니다."(2024년 4월)
공정거래위원회가 '제빵 산업 실태 조사' 연구용역을 통해 규제·유통구조 개선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한 지 1년여가 지났지만 제대로 된 원인 파악과 대책 마련을 하지 못하고 있다. 공정위는 계획대로 빵값 상승의 원인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실태조사 연구용역을 진행했고, 당초 지난해 10월께 나오기로 한 결과와 대책은 연말까지 미뤄지더니 1년여가 지난 2025년 6월 현재도 미공개 상태다. 공정위 관계자는 "연구용역 결과는 나왔지만 공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소관부처와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공정위가 빵값 상승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실태 조사까지 나섰음에도 구체적인 원인 공개 및 대책 발표를 미루는 사이 전 세계적으로도 악명 높은 한국의 빵값은 연일 오름세를 보이면서 소비자 부담을 키우고 있다. '빵플레이션(빵+인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가 생겼을 정도다.
14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달 빵 소비자물가지수는 138.48로 집계됐다. 기준연도인 2020년(100)과 비교하면 5년간 빵값이 무려 38.48% 올랐다는 뜻이다. 같은 기간 ▲떡볶이(34.69%) ▲커피(34.66%) ▲치킨(28.21%) ▲라면(24.64%) ▲떡 (24.18%) ▲스낵 과자(18.60%) 등 품목 보다 높은 오름폭을 나타냈다.
빵값 상승세는 프랜차이즈 제과점의 가격 인상에서도 확인된다. 지난 2월 SPC그룹의 파리바게뜨는 빵 96종과 케이크 25종 가격을 평균 5.9% 인상했으며, CJ푸드빌이 운영하는 뚜레쥬르는 3월1일부터 빵과 케이크 110여종의 가격을 평균 약 5% 올렸다. 양 사는 "주요 원재료와 각종 제반 비용이 상승해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제빵업계가 빵값을 올리는 배경으로 가장 먼저 꼽는 것은 밀가루·설탕 등 수입 의존도가 높은 주요 원자재 가격 상승이다. 밀가루의 경우 약 99%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국제 밀 가격이 오르면 국내 빵값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한다. 프랑스 등 밀 자급률이 높은 국가와 사정이 다르다는 것이다.
하지만 원자재 가격이 내리더라도 빵값이 제자리를 찾지 않는 것은 빵값 상승 배경을 밀가루·설탕 등 주요 원자재 가격 상승 때문만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이유가 된다. 2022년 5월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t당 419달러까지 치솟았던 국제 밀 선물가격은 이후 하락세로 전환돼 지난 1일 기준 t당 199달러까지 떨어졌다.
대형 업체 위주의 과점형 시장과 복잡한 유통구조가 빵값 상승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국내 베이커리 시장은 그동한 대기업이 가격 결정과 시장 점유율을 주도해왔으며 원재료 수입사부터 도소매 납품업체 등 여러 단계를 거치며 마진이 누적되다 보니 최종 소비자 가격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부 당국이 빠르게 오르는 빵값에 대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보니 가격 상승의 부담은 오롯이 소비자의 몫이 됐다. 직장인 임소정씨(30)는 "예전에는 동네 빵집에서 자주 빵을 사 먹었는데, 몇 년 새 가격이 많이 오르다 보니 이제는 자주 사 먹기가 부담스럽다"며 "대신 마트에서 파는 빵을 주로 먹는다. 특히 마감 할인 시간에 맞춰 가면 더 저렴하게 살 수 있어 마트를 더 자주 찾게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