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선포와 이에 근거해 위헌 위법한 포고령을 발령하고 군 병력 및 경찰 공무원을 동원해 국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을 점거·출입 통제하는 등의 행위는 형법 87조에서 정한 내란 행위에 해당한다."
21일 내란 중요임무 종사 등 혐의로 기소된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 대한 1심 재판에서 재판부는 이같이 판결했다. 이후 선고 내내 12·3 비상계엄을 '12·3 내란'으로 명시적으로 규정했다. 한 전 총리의 혐의 대부분은 유죄로 인정했다. 그리고 징역 23년을 선고했다. 조은석 내란 특별검사팀의 구형량인 징역 15년보다 8년이나 많았다.
앞으로 항소심과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에서 공방은 지속되겠지만, 이번 판결에서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12·3 비상계엄을 '위로부터의 내란'이라고 판단한 점이다. 이른바 '친위쿠데타'라고 부르는 위로부터의 내란은 '아래로부터의 내란'보다 더 엄중한 범죄라고 봤다. 국민이 선출한 권력자가 헌법과 법률을 경시하고 내란 행위를 한 것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한 국민의 신념을 저버린 것이란 판결이다.
국무총리는 행정부의 이인자인 만큼 그 권력에 합당한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비상계엄이 위헌한 조치였다면 이를 막아야 할 위치에 있는 총리는 그 역할을 다했어야 했다. 재판부의 판결은 모든 공직자에게 던져주는 메시지가 분명하다. 행정부는 물론 입법부, 사법부의 공직자들이 가져야 할 책임의 무게를 말한다. 공직자는 항상 자신에게 주어진 공적인 임무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어떻게 국민에게 봉사할지 되돌아봐야 한다. 그런 공직자의 자세가 쌓여야 계엄 사태와 같은 갑작스러운 상황에서도 온전히 국가와 국민을 위한 판단을 할 수 있다.
우리는 12·3 계엄 이후 13개월 넘게 혼돈과 갈등의 시간을 보냈다. 이번 판결은 이 시간에 마침표를 찍고 새 시대로 나아가는 계기가 돼야 한다. 정치는 대화와 통합의 길을 찾아야 한다. 여야는 통일교·신천지 특검을 비롯해 각종 사안을 두고 대립하고 있다. 제1야당 대표는 일주일 넘게 단식 중이다. 여야는 다시 마주 앉아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여당이 먼저 양보하고 손을 내밀 필요가 있다. 법안을 만들고 예산을 편성할 때, 야당은 여당을 이기기 힘들다. 늘 지는 싸움을 한다. 여당은 모든 걸 다 가지려고 해서는 안 된다. 야당의 존재를 인정하고 협상 파트너로 존중할 때 정치는 작동한다.
정치인은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한다. "본인을 위한 정치, 정치를 위한 정치를 하는 정치인이 많다"는 한 국회의원의 고백은 한국 정치의 현실을 보여준다. 선거 때마다 '국민을 섬기겠다'고 약속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도루묵이 된다.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을 찾아내는 것은 국민 몫이다. 오는 6월 지방선거는 국민의 능력을 보여주는 또 한 번의 기회가 될 것이다.
한국 경제는 복합위기를 맞아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다. 국민들은 원화가치 하락, 급등하는 물가, 줄어드는 일자리 문제 등으로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정치인과 공직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몰두해야 한다. 우리가 가진 구조적 문제가 무엇인지를 찾아내 해결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어떤 대응책을 펼쳐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우리의 미래를 지켜낼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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