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반도체 호황으로 반도체 기업들의 '역대급 성과급' 소식이 대학 입시 지형까지 흔들고 있다.
고소득의 대명사였던 의사 연봉에 육박하는 실질 수령액이 공개되면서 최상위권 수험생들의 발길이 의대 대신 반도체 계약학과로 향하는 이른바 '반도체 르네상스'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적은 급여와 열악한 환경 등을 이유로 등한시되던 이공계 인력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며 고급 인재들을 끌어들이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변화를 이끈 선두주자로는 SK하이닉스가 손꼽힌다. 반도체 업계 핵심 인력의 보수 수준이 고소득 전문직과 비교되는 구간까지 올라왔다는 평가가 나오면서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올해 연간 총보수는 상위 인력 기준으로 3억원대 중반 수준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된다. 보수는 기본 연봉과 성과급을 합산해 결정되며, 신입 초봉은 5000만원대, 부장급 기본 연봉은 1억원 안팎이다. 여기에 실적에 연동된 성과급이 더해져 실적이 크게 개선된 해에는 개인별 성과급이 1억~2억원 수준에서 형성된다. 반면 고소득 전문직의 대표 격인 의사의 평균 연봉은 3억5000만~4억원 수준으로 집계돼 반도체 대기업 핵심 인력의 상위 보수와 격차가 크게 좁혀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성과급 규모가 커지면서 직급과 개인 성과에 따라 차등 지급되는 구조가 됐다"며 "상위 인력의 연간 보수가 고소득 전문직과 비교되는 수준까지 올라온 흐름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노사 합의를 통해 2025년도 연간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활용하기로 하고, 성과급 상한선을 폐지했다. 이 제도가 적용될 경우 성과급 지급 규모가 실적에 따라 크게 확대될 수 있는 구조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성과급 체계 변화가 구성원 개개인의 연간 보수 수준을 끌어올리며, 전통적인 고소득 직군과의 보수 격차를 빠르게 좁히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삼성전자의 올해 보수 수준도 이에 버금갈 것이란 관측이 업계에서 나온다.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 부문은 연간 목표이익을 초과 달성할 경우, 초과분의 20%를 성과급 재원으로 활용하는 사내 제도에 따라 성과급이 지급된다. 이 제도가 적용되면 직원들은 개인 연봉의 최대 50%까지 성과급을 받을 수 있는 구조다.
반도체 업계 전반의 성과급 확대가 알려지면서 인재들의 진로 선택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학원가에 따르면 2026학년도 대학 정시모집에서 반도체 관련 학과의 경쟁률이 전반적으로 상승한 반면, 최상위권 수험생이 몰리던 의대 경쟁률은 상대적으로 둔화된 것으로 집계됐다.
산업 전망과 보수 수준이 진로 선택의 주요 변수로 작용하면서, 이공계 중심의 입시 문화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종로학원이 지난 18일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7개 대기업이 운영하는 16개 계약학과 지원자가 2478명을 기록해 지난해 1787명보다 38.7%나 증가했는데 그중에서 삼성전자 계약학과 8곳과 SK하이닉스 계약학과 3곳이 도합 1610명의 선택을 받았다. 기업 중 가장 많은 지원자다. 경쟁률도 단연 돋보인다. 삼성전자와 계약한 대구경북과학기술원 반도체공학과는 무려 89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SK하이닉스와 계약한 한양대 반도체공학과는 11.8대 1로, 서울 주요 11개 대학 학과 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업계 관계자는 "AI 메모리 수요가 올해도 계속될 가능성이 분명하고, 고액으로 형성된 성과급 수준, 연봉 규모 등이 유지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학생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제 관건은 이러한 흐름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느냐다. 업계에서는 반도체 기업들이 이번 성과를 계기로 산학 협력과 계약학과 확대 등 인재 유치 활동을 한층 강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동시에 성과급 체계의 지속 가능성을 둘러싼 내부 논의도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10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반도체 전시회에서 계약학과를 별도로 소개하며 교육 과정과 진로를 안내한 바 있으며 경영진 역시 사내 소통 행사에서 성과급 제도의 중장기 방향에 대한 논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도 지난해 8월 사내 소통행사에서 구성원들에게 성과에 걸맞은 보상이 이어질 수 있도록 성과급 체계의 지속 가능성을 계속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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