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관세로 반도체 공장 유도…'최혜국' 한국도 불안

미국, 반도체 투자·생산과 관세 혜택 연계
韓, 세부 기준 조율 과제

美, 관세로 반도체 공장 유도…'최혜국' 한국도 불안

미국이 반도체 관세를 활용해 해외 반도체 기업의 미국 내 생산을 유도하는 전략을 본격화하면서, 한국 정부와 업계가 대응 방향을 주시하고 있다. 최근 미국과 대만 사이에 이뤄진 반도체 '투자-관세 연계 모델'이 글로벌 표준으로 확산될 경우 한국 기업에도 영향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간 반도체는 공급망 차원에서 보조금 정책과 주로 결합돼 왔지만, 최근에는 관세·조달·투자·안보 요소가 복합적으로 연결되는 경향이 뚜렷해지는 모습이다.


20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대만 기업이 미국 내 반도체 생산 역량을 일정 수준까지 확대할 경우 일부 관세를 면제하는 방식을 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반도체를 단순 교역품이 아닌 전략 산업·안보 자산으로 재분류하는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한·미 협상에서 최혜국 대우 원칙을 확보해 대만 대비 불리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했다"며 "다만 관세 적용 품목과 투자 인정 범위 등 기술적인 쟁점은 미국 측과 계속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전략 변화는 현지 발언에서도 나타났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지난 16일(현지시간) 뉴욕주에서 열린 반도체 공장 착공 행사에서 "메모리 반도체를 만들고 싶은 기업에는 두 가지 선택이 있다. 100% 관세를 내거나 미국에서 생산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정국을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한국과 대만 등 메모리 생산국을 대상으로 미국 내 제조를 압박하는 메시지로 해석됐다. 업계에서는 "관세를 지렛대로 삼아 생산과 투자까지 이전시키려는 시그널"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美, 관세로 반도체 공장 유도…'최혜국' 한국도 불안

대만 기업은 미국 내 생산 능력을 건설 단계 기준 2.5배, 완공 이후 1.5배 확대할 경우 관세 감면을 받을 수 있다. 미국이 개별 국가 합의를 언급하긴 했지만, 대만 반도체 업계가 미국 투자를 안보·공급망 관점에서 수용하면서 미국이 유사한 모델을 한국과 일본, 유럽으로 확장할 명분을 얻게 됐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정부가 확보한 '최혜국 대우' 원칙이 실제 관세 혜택으로 이어질지도 미지수다. 대만 모델이 미국 내 생산을 늘리는 대신 관세를 깎아주는 '조건부 혜택' 구조여서, 대만이 받은 혜택이 한국에도 자동으로 적용되는 방식은 아니다. 투자 규모나 생산 계획이 국가별로 다르면 결과도 달라질 수 있어, 최혜국 원칙은 대만보다 불리하게 대우받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장치일 뿐 혜택을 보장하는 장치는 아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우리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 요인이 작지 않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반도체 공장을 건설 중이나, HBM(고대역폭 메모리) 등 AI용 제품은 국내와 중국 생산 비중이 높다. 미국 내 생산으로 전환할 경우 CAPEX(설비 투자비), 인력, 전력, 수율 확보 등이 동시에 과제로 부상할 수 있다. 특히 HBM은 올해 들어 AI 서버 수요가 폭발하면서 전략 물자로 분류되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어 관세, 조달, 보조금 규제와 결합할 가능성도 지적된다. 따라서 업계에서는 이번 조치를 보호주의를 넘어 산업 정책·공급망·안보가 결합한 새로운 규칙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공급망 차원에서도 변화가 나타난다. 미국은 반도체를 국가 전략·안보 차원의 자산으로 재분류 하며 동맹국과의 협력 채널을 확대하고 있다. 일본은 반도체 장비·소재 분야에서 미국과 기술·투자 협력을 강화하고 있고, 유럽연합(EU)은 'Chips Act'를 통해 역내 반도체 생산 역량과 공급망 회복력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이 미국을 축으로 재조정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평가다. 반면 중국은 반도체 수출 통제와 반도체 장비 제한을 중심으로 미국과 대립하는 구도라는 점에서 한국 기업의 공급망 선택권이 좁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우리 정부는 기업과의 의견 수렴을 전제로 미국 측과 정합성을 조율할 계획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향후 협상에서 AI 반도체 정의, 공정 인정 범위, 투자 시점 등 기술적 요소를 다루게 될 것"이라며 "HBM, 파운드리, 메모리, 시스템 반도체 등 품목별 특성을 감안해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세종=강나훔 기자 nah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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