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현대 신관과 두가헌 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 '화이도'가 한국 현대회화의 '회화적 원형'을 동시대 언어로 다시 읽는다. 이번 전시는 활발히 활동 중인 6명의 작가가 출품한 75여 점을 통해, 특정 시대나 양식으로 환원되지 않는 한국적 시각 감수성과 화면 구성, 세계 인식의 태도가 오늘의 회화 안에서 어떻게 변주·확장되는지 조명한다.
'화이도(以道, The Way of Painting)' 전시장 내부 전경. 갤러리현대 제공
전시가 말하는 '회화적 원형'은 과거 형식의 재현이나 계승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랜 시간 축적된 시각적 DNA가 일상적 감각, 기술, 새로운 매체를 만나 재가동되는 지점을 탐색한다. 전통은 고정된 유산이 아니라 오늘의 시선 속에서 새롭게 작동하는 현재형 언어이며, 이번 전시는 그 과정에서 배제되거나 금기시돼 온 무속적 세계관과 감각까지 포함해 '한국성'의 범위를 확장한다.
공간 구성은 작가별로 선명하다. 갤러리현대 신관 1층에서는 김지평, 2층에서는 박방영·이두원, 지하 1층에서는 김남경·안성민의 작품이 소개된다. 두가헌 갤러리에서는 정재은의 작업을 만날 수 있다.
김지평은 책가도·산수화·장황 등 동아시아 회화의 형식을 '닫힌 틀'이 아닌 시대와 사회적 맥락에 따라 재구성되는 구조로 바라본다. 버려진 회화 조각과 장식 요소를 재배치하는 방식으로 주변화된 존재와 누락된 이미지를 호출하며, 전통의 균열에서 새로운 서사를 길어 올린다. '디바-무(巫)'(2026)에서는 무당과 여성, 배경으로 밀려난 목소리를 전면화하는 장치를 통해 '전통의 바깥'에 놓였던 감각을 원형의 다른 가능성으로 연결한다. 민화 '호피도'를 참조한 '찬란한 껍질' 연작은 상징성과 추상성을 확장해 호랑이가 지닌 영험함과 서사를 동시대 감각으로 새로 엮는다.
'화이도(以道, The Way of Painting)' 전시장 내부 전경. 갤러리현대 제공
2층의 박방영과 이두원은 조선 후기 민화의 개방성과 비정형성을 현재형 회화로 번역한다. 박방영은 한지와 먹을 바탕으로 진주·금가루·아크릴 등 혼합 재료를 더해 문자와 이미지가 한 화면에서 공존하는 장면을 만든다. 화면에 배치된 문구는 회화의 일부로 기능하며 자연과 동행, 삶의 태도를 환기한다. 이두원은 제도권 교육 대신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천연 재료를 전통 먹과 결합해 즉흥적 화면을 구축한다. '기명절지도', '설중대춘도' 등 전통 회화의 형식을 차용하되 상징의 위계를 풀어 자연·동물·인간을 동등한 존재로 배치하며, 전통이 본래 지녔던 자유로움을 더 적극적으로 활성화한다.
지하 1층에서는 전통 회화의 '구조'가 기술과 결합하며 확장된다. 안성민은 민화 도상을 현대 오브제와 대치시키거나 분해·재조합해 초현실적 서사를 만든다. 레이저 커팅을 활용한 '구름물_족자'는 반복·전승의 제작 논리를 디지털 조건으로 번역해, 이미지뿐 아니라 생산·복제·유통의 시스템까지 호출한다. 김남경은 책가도의 엄격한 질서에 '15도'의 미세한 기울어짐을 더해 시점을 흔들고, 고정된 해석에서 벗어나게 하는 감각적 장치를 제안한다. '비네트' 연작은 파편적 장면들이 모여 느슨한 전체를 이루는 구성을 통해, 동시대의 다중적 인식 구조를 반영한다.
'화이도(以道, The Way of Painting)' 전시장 내부 전경. 갤러리현대 제공
두가헌 갤러리의 정재은은 '일월오봉도'의 협폭 삽병 형태를 차용해 동일한 화본을 반복·변주한다. 채색의 농담과 선의 밀도, 금·은분의 빛 효과로 화면의 분위기를 달리하며, 반복 속에서 변주의 가능성을 드러낸다. 대형 '일월오봉도'(2017)는 상하 대칭 구조로 확장해 '반영'의 장면을 만들고, 순환과 균형이라는 우주론적 사고를 시각화한다. '책가도', '책거리' 연작은 절제된 색면과 기하학적 구조의 리듬으로 안정적인 긴장감을 구축한다.
'화이도'는 전통을 과거의 형식으로 고정하지 않고, 오늘의 감각 속에서 다시 생성되는 '살아 있는 원형'으로 재정의한다. 과거의 도상을 불러오는 데서 멈추지 않고, 우리 안에 내재한 미적 DNA가 동시대 언어로 발화되는 순간을 포착하며 현대 한국 회화의 정체성과 확장 가능성을 함께 제시한다. 전시는 2월28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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