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개인투자자들의 자금 흐름은 그 어느 해보다 분주했다. 연초 일시적 토지거래허가 해제 국면에서 부동산으로 몰렸던 자금은 곧바로 규제 강화에 막히자 국내외 주식과 대체 자산으로 이동했다. 여기에 글로벌 금리 향방과 지정학적 리스크, 환율 변동성 등이 겹치면서 금·은·달러 등 이른바 '안전자산'으로의 쏠림 현상이 뚜렷해졌다. 풍부한 유동성 속에서 자산 가격이 전반적으로 뛰자, '현금을 들고 있으면 손해'라는 인식이 확산한 결과로 풀이된다.
지난 2월18일 서울 종로구 한국금거래소 종로본점 모니터의 모든 골드바 제품에 품절 표시가 되어 있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이 올해 들어 이달 24일까지 판매한 골드바 금액은 6779억7400만원으로 집계됐다.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20년 이후 최대치다. 지난해 연간 판매액(1654억4200만원)의 네 배를 웃돈다. 판매 중량 기록을 제공하지 않는 NH농협을 제외한 4대 은행에서 팔린 골드바는 모두 3745㎏으로, 역시 최대 기록이다. 1년 사이 2.7배로 뛰었다.
은값 급등에 힘입어 실버바 수요도 폭증했다. 실버바를 취급하지 않는 하나은행을 뺀 나머지 4대 은행의 올해 실버바 판매 금액(306억8000만원)도 은행권 시계열상 가장 많았다. 지난해(7억9900만원)의 38배에 이른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골드·실버바 구매 주체를 정밀하게 구분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 개인 투자자로 봐야 한다"며 "입행 이래 올해처럼 일반 개인투자자들이 금과 은을 많이 사는 것은 본 적이 없다"고 전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 ChatGPT
금을 예금처럼 저축해두는 골드뱅킹(금통장) 실적도 올해 기록을 새로 썼다. 신한은행 '골드리슈' 상품의 경우 현재 총 18만7859개 계좌에 금 가치와 연동된 1조2979억원의 잔액이 예치된 상태다. 계좌 수와 잔액 모두 신한은행이 지난 2003년 이 상품을 내놓은 이래 가장 많다. 지난해 말(5493억원·16만5276계좌)과 비교하면 잔액은 2.4배로 불고 계좌 수도 14% 늘었다.
원/달러 환율이 연중 내내 1400원대를 웃돌면서 달러도 대체 투자 대상으로 주목받았다. 5대 은행의 개인 달러 예금 잔액은 현재 127억3000만달러에 이른다. 작년 말보다 9억1700만달러 불어 2021년 말(146억5300만달러) 이후 4년 만에 최대 기록을 세웠다. 지난 24일 외환 당국의 구두 개입과 함께 원/달러 환율이 30원 이상 급락하자 서울 강남지역 하나은행 지점 한 곳에서는 100달러 지폐가 소진되기도 했다.
달러·원 환율이 급락한 지난 24일 서울 강남 지역 하나은행 지점 한 곳에 100달러짜리 지폐가 소진됐다는 안내문이 붙었다. 온라인 커뮤니티
전문가들은 올해 개인 자금의 흐름을 불확실성이 커진 환경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투자 행태로 보고 있다. 부동산 규제와 주식시장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상대적으로 안정성이 높은 실물 자산과 기축통화로 자금이 이동했다는 분석이다. 이런 흐름을 감안할 때 개인투자자들의 안전자산 선호는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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