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굽는 타자기]"살인죄에 반대되는 죄는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추리 소설은 오랜 시간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세계 최초의 추리 소설은 1841년 출간된 에드거 엘런 포의 '모르그 가의 살인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에도 수많은 추리 소설이 우리에게 즐거움을 줬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과 아서 코난 도일의 '바스커빌 가문의 개'와 '공포의 계곡' 등이 유명하다. 소설만이 있는 건 아니다. 최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에서는 '나이브스 아웃: 웨이크 업 데드맨'이 공개됐다. 나이브스 아웃 시리즈는 2019년 개봉한 첫 영화부터 시작해 계속해서 참신한 아이디어와 메시지를 주는 추리 영화 시리즈다.


[빵 굽는 타자기]"살인죄에 반대되는 죄는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요시다 슈이치의 신작 '죄, 만 년을 사랑하다'는 여타 추리물처럼 사립 탐정과 인물들이 폭풍우가 몰아치는 섬에 갇혀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추리 소설이다. 저자는 올해 일본의 1000만 관객을 끌어오고 한국에서도 인기를 이어가고 있는 영화 '국보'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그는 소설 국보로 일본의 '예술선장문부과학대신상'과 '중앙공론문예상'을 수상하는 등 이미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번 소설을 유명 감독 왕가위의 영화 '중경삼림'의 대사 "내 사랑의 유통기한을 만 년으로 하겠다"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이번 신작의 핵심 인물은 유명 백화점 창업자 '우메다 소고'다. 우메다 소고는 은퇴를 한 이후, 외딴 섬에 기거하면서 지내지만 밤마다 보물 '만 년을 사랑하다'를 찾는다. 소설의 긴장감은 우메다 소고가 자신의 가족과 친구, 그리고 보물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은 사립 탐정 '도갓타 란페이'가 섬에 모이면서 고조된다. 하필 이들이 모여서 신나게 저녁을 먹고 놀 때 태풍이 몰아쳐 섬에 갇히게 된다. 경찰에 연락해봤지만 섬에 오지도 못하는 상태, 소수의 내부인이 모인 공간에서 추리가 일어나는 일명 '클로즈드 서클'(Closed circle) 형태가 만들어진다.


추리 소설이지만 일본의 현대사를 다루고 있기도 하다. 우메다 소고는 과거 젊고 유명한 사업가, 늙어서는 섬에서 여생을 보내는 단순한 부자로 보일 수 있지만 어린 시절 2차세계대전 때문에 부모님과 가족을 모두 잃었다. 아버지가 생전에 주변 사람에게 베풀지 않았더라면 우메다 소고는 어느 집에서도 머물 수 없었을 것이다. 우메다 소고는 일본의 경제 성장기 때 주부 실종 사건에 연루된 적도 있다. 당시 우메다 소고는 아무런 혐의가 없어 풀려난다. 주부의 남편 역시 용의선상에 오르는 데 계속해서 가정폭력을 아내에게 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당시 가정폭력은 아무렇지 않던 일이다"고 씁쓸하게 말한다.


우메다 소고는 섬에서 암호 같은 문장을 남기고 갑자기 사라진다. 그가 남긴 문장은 인간에 대한 고찰을 하도록 만든다. "살인죄에 반대되는 죄는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소설은 후반부로 갈수록 단순 추리 소설이 아닌 인간의 존재에 대한 고민, 사회가 인간에게 남긴 상처 등을 돌아볼 수 있는 이야기로 확장된다. 실제로 요시다 슈이치는 이번 소설과 관련한 인터뷰에서 "인간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살아서 피가 흐르는 인간이 나오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소설에서 사립 탐정이 추리하는 장면을 보면 문득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떠오를 정도로 추리 소설의 즐거움을 준다. 아울러 인물들의 슬픈 사연은 이야기의 깊이를 더해준다. 즐거움과 깊이 모두 느끼길 바란다면 죄, 만 년을 사랑하다를 추천한다.


죄, 만 년을 사랑하다|요시다 슈이치 지음|이영미 옮김|은행나무|340쪽|1만8000원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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