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부동산 대책으로 정비사업지에서 이주비 대출 한도가 줄거나 대출을 받을 길이 막막해진 조합들이 다양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더 많은 이자를 내더라도 시공사 신용보강을 통해 '추가 이주비 대출'을 받는 대안이 대표적이다.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일부 조합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보증하는 사업비 대출을 조합원에게 제공하는 우회로를 마련하고 나섰다.
조합의 고민이 깊어지면서 정비사업 일정은 점차 밀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도심 정비사업 속도가 떨어지면서 주택 공급 부족을 가중시키고 집값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 여의도 63빌딩 전망대에서 바라본 노량진 재개발 예정지 모습. 아시아경제DB
25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2992가구 규모 재개발을 추진 중인 노량진1구역은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앞두고 이주비 조달에 난항을 겪고 있다. 전체 조합원 961명 가운데 약 70%가 1+1 분양 신청자이거나 다주택자로 분류되면서 이주비 대출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관리처분계획 인가 예정인 노량진 3구역이나 내년 4월 이주를 앞둔 송파구 가락삼익맨숀도 사정이 비슷하다. 3구역은 전체 조합원(518명)의 5분의 1인 100여명이 다주택자로 분류된다. 가락삼익맨숀은 조합원 930명 중 33명이 1+1 분양을 택해 규제 대상에 포함됐다.
이주비 대출은 조합원이 기존 주택을 담보로 받는 집단담보대출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보증을 통해 금융권에서 조달한다. 시공사 신용보강 방식의 추가 이주비 대출보다 금리가 낮은 것이 특징이다.
정부의 6·27 대출 규제로 이주비 대출 한도는 6억원으로 대폭 줄었다. 2주택자는 1채를 처분하지 않으면 대출을 못 받는다. 1+1 분양 신청자도 다주택자로 분류해, 준공 후 3년 내 주택 처분을 약정해야 이주비 대출을 받을 수 있다. 10·15 대책이 나오면서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서울 전역이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되면서인해 재건축·재개발 조합원의 LTV는 40%로 축소됐다. 감정평가액 15억원 이하인 주택을 보유한 조합원의 경우 한도인 6억원도 받기 힘들게 된 것이다.
이주비 마련이 어려워지면서 일부 사업장에서는 조합원들이 사업 속도를 늦추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의 한 재개발 조합 관계자는 "6억원으로는 세입자 전세금을 돌려주고 이사 갈 집을 구하기 어렵다는 조합원이 많다"며 "관리처분 절차를 미루자는 조합원과 사업을 서둘러야 한다는 조합원 사이에 마찰이 빚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조합 중에서는 시공사의 신용보강을 통해 추가 이주비 대출을 받는 방안을 검토하는 곳이 많다. 그러나 이 대출은 통상 기본 이주비 대출보다 금리가 1~2%포인트 높고, 시공사 선정 당시 관련 조건이 명시되지 않은 사업장의 경우 관리처분계획 인가 시점에서 별도 협상이 필요하다. 강북의 한 재개발 조합 관계자는 "강남 핵심 사업장을 제외하면 시공사가 추가 이주비 대출 협상에 적극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제경 투미부동산건설팅 소장은 "추가 이주비 대출은 시공사가 신용보강 부담을 떠안는 구조여서 핵심 사업장을 제외하면 협상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HUG 보증을 담보로 한 사업비 대출을 통해 우회로를 찾는 곳도 있다. 노량진1구역 조합은 HUG 보증을 통해 금융권에서 조달한 사업비 일부를 다주택자 조합원의 임대차 보증금 반환에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통상 조합은 운영비 충당을 위해 HUG 보증을 담보로 사업비 대출을 받지만, 이를 조합원 세입자 보증금 반환에 쓰겠다는 것이다. 다주택자가 기본 이주비 대출에서 배제되면서 나온 고육지책이다. 조합은 조합원당 감정평가액의 60% 이내(최대 6억원)에서 사업비로 전세보증금으로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집행된 보증금은 추후 조합원 소유 주택에 근저당을 설정해 회수한다는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이주비 대출을 옥죄는 현 구조가 서울 외곽이나 비핵심 정비사업장의 사업 동력을 크게 약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정비사업의 속도가 떨어져 주택 공급 부족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송승현 도시와경제대표는 "앞으로는 사업성이 뛰어나거나 우회 대책을 찾은 사업장에 한해서만 기존보다 느린 속도로 정비사업이 추진될 것"이라며 "사업 지연은 주택 공급 부족으로 이어져 집값 상승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고 분석했다.
권영선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팀장도 "이주비 대출 규제를 통해 투자 수요를 눌러놓으려 한 시도가 공급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며 "결국 사업성이 뛰어난 일부 사업지와 우수한 추가 이주비 대출 조건을 제공할 수 있는 시공사에만 기회가 주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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