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25개구 중 16개구의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 상승액이 서울 근로자의 연간 임금총액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강남·서초 아파트의 1년 상승액은 연봉의 6배를 넘어섰다. 서울 아파트를 가지고 있기만 해도 연봉 이상을 버는 경제 구조가 고착하면서 '성실한 노동'의 가치가 점차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압구정 현대아파트./김현민 기자 kimhyun81@
5일 부동산R114로부터 받은 '서울 자치구별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을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분석한 결과, 서울 16개 구(강남·서초·송파·용산·성동·광진·마포·강동·영등포·동작·양천·서대문·중구·종로·강서·동대문구)의 연간 아파트 상승액이 6000만원을 넘어섰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9월 발표한 서울 지역 근로자 1인 이상 사업체의 근로자 1인당 임금 총액(월 476만5000원, 연 환산 5718만원)을 넘긴 것이다. 16개 구에서 아파트 한 채를 보유한 이들은 1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무주택 일반 근로자보다 더 큰 자산 증식을 누렸다는 의미다.
특히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와 용산구는 서울 전체 상승세를 압도하는 등 가장 큰 격차를 보였다. 강남구의 연간 상승액은 3억7521만원으로 연봉 대비 약 6.56배를 기록했다. 서초구는 3억5335만원(6.18배), 송파구는 3억3190만원(5.80배), 용산구는 2억5409만원(4.44배)을 나타냈다.
'한강벨트' 핵심 지역인 성동구(1억9500만원, 연봉의 3.41배), 광진구(1억6965만원, 2.96배), 마포구(1억6662만원, 2.91배)도 연봉의 2배가 넘는 상승 폭을 보였다. 한강에 인접한 강동구(1억5914만원, 2.78배), 영등포구(1억5680만원, 2.74배), 동작구(1억4664만원, 2.56배)도 마찬가지다. 이들 6개구는 문재인 정부 시절(2017∼2022년) 기록한 아파트값 최고점을 돌파하기도 했다.
외곽 지역은 상대적으로 낮은 오름폭을 보였다. 서울 내부에서도 지역별 온도 차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노원·도봉·강북·금천·관악·구로·은평·성북·중랑 등 9개 구는 연간 상승액이 연봉(5718만원)보다 낮았다. 노원(2380만원)·도봉(1505만원)·강북(1669만원)은 연봉의 절반 수준에 못 미쳤다. 금천도 467만원 오르는 것에 그쳤다.
이 같은 집값 상승은 "일을 해서는 도저히 서울 아파트를 살 수 없다"는 '노동 무용론'을 확산시키고 있다. 2030 무주택자 사이에서는 "벼락거지가 됐다"는 체념이 늘고 있다. 자산 격차 확대가 향후 사회적 갈등 요인으로 떠오를 가능성도 제기된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 랩장은 "서울 핵심 지역의 주택시장은 여전히 풍부한 유동성과 제한된 공급이 가격을 지지하고 있다"며 "임금 상승으로는 집값 상승 속도를 따라잡기 어려운 구조"라고 밝혔다. 이어 "강남·서초 등 특정 지역으로의 쏠림이 심화할수록 자산 양극화는 더 커질 수 있다"며 "중장기적인 공급 계획 없이 단기 규제만으로는 구조적 격차 해소가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한편 정부는 이달 중 시장 안정화를 위한 추가 공급 대책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시장에서는 획기적인 방안을 내놓지 않는다면 서울의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을 꺾기 어려울 것이라는 회의론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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