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업계는 악화한 경영환경 속에서도 수익성과 건전성을 지키기 위해 프리미엄 카드 확대, 사업자표시전용카드(PLCC) 협업 강화, 해외여행 특화 상품 개발, 스테이블코인 기반 지급결제 선점 등 다층적인 해법을 추진하고 있다. 본업인 신용판매 확대가 어려워진 만큼, 고수익 상품과 신사업 중심의 구조 전환이 향후 생존과 직결된다는 판단이다.
하나금융그룹이 지난달 11일부터 판매하기 시작한 지드래곤 한정판 상품을 그룹 광고모델 지드래곤이 소개하고 있다. 그는 디자인 작업에 직접 참여했다. 하나금융그룹
5일 업계에 따르면 8개 전업 카드사(삼성·신한·현대·KB국민·롯데·하나·우리·BC카드)는 건전성 관리를 최우선으로 유지하면서도, 신용판매 확대 대신 수익성과 마진 중심의 영업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에 따라 혁신상품과 프리미엄 카드가 수익성 방어의 핵심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실제 카드고릴라의 11월 신용카드 TOP 10 집계에서도 혁신·프리미엄 상품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예컨대 '삼성 iD 셀렉트'는 혜택을 매달 선택할 수 있는 혁신 상품으로 출시 석 달 만에 3위에 올랐다. 연회비 30만원의 현대카드 아멕스 골드 애디션2도 8위를 기록했다. 우리카드의 대표 혁신상품 '카드의정석 에브리 디스카운트'는 6위를 기록하며 꾸준한 인기를 보였다.
프리미엄 카드 중심의 영업 전략이 확산하면 연회비 수익도 상승한다. 실제 카드업계의 노력이 이어지면서 8개 전업 카드사의 2분기 연회비 수익은 384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1% 늘었고, 3년 전보다 22.7% 증가했다. 카드 수익 대비 연회비 비중 역시 2022년 2분기 6.3%에서 올해 7.3%로 높아지며 고수익 상품 중심 구조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카드사별로는 프리미엄·특화 상품 비중 확대 정도에 따라 증가율 차이가 나타났다. BC카드를 제외한 최근 3년간 연회비 수익 증가율은 하나카드(70.3%), 현대카드(54.1%), 롯데카드(28.9%) 순으로 높았다.
실제 하나카드는 연회비 100만원 '지드래곤 센텀 바이 제이드', 현대카드는 연회비 700만원 센츄리온(기본 200만원·제휴 500만원) 등 고가 프리미엄 상품을 지속 확대하며 수익 구조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PLCC 경쟁력 강화도 고수익 구조를 구축하기 위한 핵심 전략으로 꼽힌다. 현대카드가 주도하던 시장에 삼성·신한·하나카드까지 본격 진출하면서 브랜드 유치 경쟁이 한층 격화되고 있다. 배달의민족·스타벅스가 기존 현대카드에서 각각 신한·삼성카드로 제휴사를 옮긴 것이 상징적이다. 신한카드는 키움증권·코웨이·넥센타이어와 협업했고, 하나카드는 MG새마을금고와 함께 출시한 'MG+S, W' 시리즈가 인기를 끌었다.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을 앞둔 25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을 찾은 여행객들로 붐비고 있다. 인천공항공사는 여름철 성수기인 7월말부터 8월초까지 3주간 약 391만명이 인천공항을 이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2025.7.25. 강진형 기자
해외여행 수요 증가도 카드사에는 중요한 단기 성장 기회다. 하나카드 '트래블로그', KB국민카드 '트래블러스' 등 여행 특화 상품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3분기 국내 거주자의 해외 카드 사용액은 59억3000만달러(약 8조7355억원)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비거주자의 국내 카드 사용액도 37억6000만달러(약 5조5160억원)로 사상 최대 수준을 유지했다. 경기 둔화 속에서도 여행 소비가 살아나면서 단기 수익성 회복에 기여하는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장기 신사업으로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지급결제 사업, 기업정보조회업 등을 포함한 빅데이터 및 AI 활용 사업, 테크 기업과의 제휴를 통한 간편결제 부수업무 확대 등이 꼽힌다. 가장 확실한 카드는 스테이블코인 결제사업 진출이다. 수수료, 정산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어 소상공인·자영업자 고객 확보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카드사 경영비용 절감에도 도움이 된다. 또한 비자·마스터카드처럼 자체 결제망에 스테이블코인을 탑재해 국내외 결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다만 한국은행 등 일부 기관에서는 발행을 비롯한 스테이블코인 취급을 은행권이 도맡아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반발이 만만찮을 것으로 보인다. 카드업계는 여신금융협회를 중심으로 태스크포스(TF)를 만들고 비은행 금융회사도 원화 스테이블코인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구축하기 위해 금융당국, 정치권과 치열하게 협의해나갈 예정이다.
카드사들은 개인 간 거래 외 가맹점 거래 결제망을 갖추고 있는 만큼 원화 스테이블코인 지급결제 부수사업을 할 역량이 충분하다는 논리로 정부와 정치권을 설득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일부 여당 의원은 스테이블코인 도입 작업을 핀테크 기업이 이끌어야 한다는 반론을 펴고 있어 난항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근처 약국과 식당들이 있는 거리가 한산하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카드사의 풍부한 고객 데이터를 바탕으로 생산적금융 아이템을 발굴하는 것도 대안으로 꼽힌다. 인공지능(AI) 체계를 고도화하고 마이데이터 사업 역량을 끌어올려 기업은 물론 소상공인 및 자영업자에도 상권 분석, 경영 진단, 신용평가 고도화 등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이 새 먹거리로 주목된다. 지역별, 매출별 가맹점 맞춤 데이터 공유사업 등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삼성카드, 신한카드가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삼성카드 는 지난해 5월 데이터 플랫폼 '블루 데이터 랩'을 정식 출범하고 서비스 다각화를 위해 연구 중이다. 신한카드는 지난해 8월 개방형 데이터 마켓 플레이스 '데이터바다'를 출시했다. 올 3월엔 사업 목적에 기업정보조회업을 추가하고 금융당국의 라이선스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카드사 관계자는 "카드사 데이터 사업을 활성화하면 제휴 기업은 물론 상권 분석에 어려움을 겪는 영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수요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며 "본업(신용판매)이 아닌 부수업무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는 선에서 빅데이터 비즈니스 모델을 다양화, 고도화해 활로를 모색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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