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가 전 인수합병(M&A)에 난항을 겪고 있는 홈플러스가 결국 '청산 가능성'까지 검토해야 하는 국면으로 몰리고 있다. 정치권에서 각종 구제 시나리오를 쏟아내고 있지만 실현 가능성과 재무적 타당성이 낮아 청산 우려가 커지고 있다.
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전국 5개 점포에 대해 연내 영업 종료를 검토 중이다. 현금 유동성 악화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다.
홈플러스는 6개월째 새 주인을 찾지 못하면서 매출이 두 자릿수 이상 빠지는 등 경영난이 심화되고 있다. 대형 협력 업체들이 물품 공급을 줄인 여파다.
각종 공과금과 국민연금 등도 연체된 상황이다. 종합부동산세와 부가가치세, 지방세, 재산세 등 총 700억원에 달하는 세금을 납부하지 못하고 있다. 20억원 수준의 전기료 미납분까지 합치면 920억원에 이르는 각종 비용을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앞서 홈플러스의 대주주인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이 "인수합병(M&A)이 성사될 때까지 폐점을 보류하겠다"고 밝혔던 방침이 흔들리는 양상이다.
31일 서울시내 한 홈플러스 매장 앞. 연합뉴스
홈플러스가 직원 임금 체불 위기로 스스로 영업을 중단할 위기로 내몰리자 정치권과 시장에선 여러 구제안이 나오고 있지만 실현 가능성은 낮다.
정치권에서는 농협중앙회가 인수하는 방안을 가장 적극적으로 거론한다. 지역 상권 붕괴와 대규모 고용 문제를 고려하면 공적 기능을 가진 기관이 책임 있게 나서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농협은 자체 유통 부문의 구조조정 과제와 재무 부담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또 농가 보호와 물가 안정을 목적으로 농산물을 매입하는 농협·하나로마트의 구조는 대형마트의 상품 조달 과정과는 다르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연합자산관리(유암코)를 통한 구조조정 시나리오 역시 거론되고 있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당정이 협력해 유암코 등 공적인 구조조정 회사가 불투명한 채무 구조를 조정, 전문 유통경영을 할 회사가 인수에 나서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해 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유암코는 금융기관이 보유한 부실채권을 정리하는 전문 플랫폼으로, 비금융기관이 보유한 채권은 매입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홈플러스 채권의 상당 부분이 비금융권 또는 복합 구조로 구성된 만큼, 유암코가 개입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적이다.
최근 새마을금고중앙회 회장 선거에 출마한 장재곤 종로광장새마을금고 이사장이 홈플러스 인수를 공약으로 내세운 것도 화제를 모았지만 업계는 실현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선거용 메시지에 가깝고, 새마을금고의 건전성 관리 이슈가 불거진 시점에서 대형 유통사 인수에 필요한 자금과 전략적 판단을 뒷받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법원이 정한 회생계획안 제출 기한은 이달 29일이다. 인수 의향자가 없다고 해서 길이 완전히 막힌 것은 아니다. 채권단과 합의해 구조조정 방안을 담은 회생계획안을 제출하고 법원이 이를 인가하면 회생절차는 이어질 수 있다.
결국 업계에선 채권단이 인수 후보 측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줘야 M&A 가능성이 되살아날 것으로 보고 있다. 홈플러스가 파산한 뒤 부동산 자산을 매각해 채권을 회수하는 과정이 길게는 10년 이상 걸릴 것으로 전망돼 채권단 입장에서도 현 상황을 그대로 끌고 가기엔 부담이 크다.
법원은 홈플러스의 청산가치인 3조6816억원 이상의 인수가를 제시해야 한다고 본다. 홈플러스가 유동자산을 모두 털어도 약 1조7921억원의 단기부채가 남아 홈플러스를 인수·정상화하려면 최소 5조원 이상의 자금이 투입돼야 한다.
IB 업계 관계자는 "홈플러스가 인력 조정과 점포 폐쇄 등 셀프 구조조정을 통해 채권단을 설득해야 회생계획안을 제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현실적으로 홈플러스 인수에 나설 기업은 없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편 지난달 26일 진행된 홈플러스 매각 경쟁 입찰에는 기존에 인수 의사를 보였던 2개사(하렉스인포텍·스노마드)를 포함해 아무도 최종 참여하지 않았다. 홈플러스는 회생계획안 제출 기한인 오는 29일 전까지 입찰제안서를 계속 받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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