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원화 약세 속 스테이블코인, 정교한 설계 없는 속도전은 '독'

서두르면 위험, 흔들리는 원화가 던지는 설계의 기준
단기국채 부족·자본이동 속도…한국형 제약부터 직시해야
한국형 스테이블코인,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 아닌 정밀함

원화의 실질가치가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까지 떨어지며 시장 불안이 커지고 있다. 환율 변동성이 확대되는 국면에서는 금융상품 전반에 '가치 안정성' 요구가 높아진다. 스테이블코인 역시 예외가 아니다. 최근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도입 논의가 속도를 내고 있지만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는 도입 시점보다 설계의 정교함이 더 중요하다. 정밀한 설계 없이 추진되는 스테이블코인은 혁신이 아니라 시스템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시시비비]원화 약세 속 스테이블코인, 정교한 설계 없는 속도전은 '독'

스테이블코인의 안정성은 준비자산 구성, 상환 메커니즘, 유동성 관리, 운영 능력, 정보 공시 등 복합적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 특히 환율이 불안한 시기에는 발행사 리스크가 확대되고 사소한 불확실성도 신뢰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준비자산이 충분히 안전한지, 상환이 지속 가능한지, 시장 신뢰를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원화 약세 국면에서 더욱 엄격해질 수밖에 없다.

한국형 스테이블코인에는 구조적 제약이 존재한다. 해외 주요 스테이블코인은 현금·예금·단기국채로 안정성을 확보하지만, 한국은 단기국채 발행량이 적어 동일 구조를 적용하기 어렵다. 만기가 긴 국채를 준비자산으로 채우면 금리 리스크가 커져 1대1 가치 연동성이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문제를 넘어 한국 금융시장의 자산 구조와 직결된다. 초기 설계 단계에서 한국 시장의 특수성을 명확히 인식하고 준비자산 원칙을 새로 세워야 하는 이유다.


자본 이동 속도 또한 핵심 변수다. 한국은 외환시장 변동성에 민감하고 자금 흐름이 빠르다. 스테이블코인이 도입되면 개인 지갑 간 이전, 해외 스테이블코인과의 교환, 거래소 간 이동 등 자금이 기존 규제 체계보다 빠르고 광범위하게 움직일 수 있다. 특히 환율 불안 시기에는 예기치 않은 경로로 해외 유출이 발생할 소지가 커진다. 단순한 규제만으로는 통제력이 제한될 수 있으며, 자금 흐름을 장내로 유도할 유인구조와 국제적 상호운용성 설계가 필수적이다.


금융시스템 안정성 측면에서도 설계 정밀도는 핵심이다. 스테이블코인은 신뢰가 조금만 흔들려도 상환 요구가 순식간에 몰릴 수 있고, 준비자산 매각은 단기금리와 채권·외환시장에 동시다발적 충격을 줄 수 있다. 발행 시점이 원화 약세 국면과 겹친다면 작은 오작동도 시스템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 지금의 시장 환경은 "설계가 미흡한 스테이블코인이 어떤 파급을 낳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기에 충분하다.

한국의 결제·송금 인프라가 이미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높다는 점도 냉정히 평가해야 한다. 실시간 이체, 모바일 결제 보급률, 카드 수수료 등 대부분의 지표가 선진적이다. 이 때문에 스테이블코인이 국내 결제 환경에서 얼마나 추가적 효익을 창출할지 사전에 면밀히 검증해야 한다. 효용은 제한적인데 구조적 위험만 커진다면 설계 기준을 더욱 엄격히 해야 한다. 한국은 플랫폼 지배력이 강한 시장인 만큼 특정 플랫폼 생태계에서 스테이블코인이 준화폐처럼 기능할 가능성도 있다. 이는 통화정책과 금융안정과 충돌할 수 있어 제도적 방어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결국 스테이블코인 도입 논의에서 핵심은 '언제'가 아니라 '어떻게'다. 원화는 약세가 이어질 수도, 안정될 수도 있다. 어느 경우든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향후 현실적 선택지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취약성과 위험 신호가 드러나는 지금이야말로 설계 기준을 높이고,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증하고, 제도적 장치를 갖출 시점이다. 지금의 원화 약세는 분명한 교훈을 준다. 정교하게 설계된 스테이블코인은 혁신이지만, 정교함 없이 도입되는 스테이블코인은 위험이다. 원화 약세 국면일수록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더 정밀해야 한다.





이선애 기자 ls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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