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사대에서] 누리호의 '지상 0초'를 허락하는 사람, 박종찬 단장의 24시간

새벽 1시 13분, 한 번 더 미뤄진 순간을 버티고 누리호를 떠나보내기까지

편집자주이 기사는 사전 인터뷰와 발사대 운영팀·현장 엔지니어 의견 등을 사전에 취재한 뒤, 발사 후 실제 상황과 확인된 내용을 반영해 재구성한 르포형 기사입니다.

11월 26일 새벽, 해무가 완전히 걷히지 않은 나로우주센터에는 차가운 바람이 흐르고 있었다. 누리호 4차 발사가 예정된 새벽 1시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지만, 발사대는 이미 '발사일'의 긴장감으로 조용히 깨어 있었다.


발사 18시간 전. 박종찬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형발사체 고도화사업단장은 숙소 앞에서 하늘을 잠시 올려다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는 "발사대는 단 한 번의 변명도 허용하지 않는다"며, 이날 하루가 "장비가 정답을 말해주기를 바라는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27일 새벽 누리호 4차 발사 성공 이후 나로우주센터 발사임무통제센터(MDC)에서 박종찬 단장(서 있는 이들 중 가운데)이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항우연 제공

27일 새벽 누리호 4차 발사 성공 이후 나로우주센터 발사임무통제센터(MDC)에서 박종찬 단장(서 있는 이들 중 가운데)이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항우연 제공


"발사대는 단 한 번의 변명도 허용하지 않는다"

박 단장이 머무는 숙소는 나로우주센터 내부 연구원동에 있다. 방음이 잘된 편이지만 발사 전날 밤은 늘 다르다. 엔진 점화 시험 로그와 발사 시나리오가 머릿속을 계속 스치며 쉽게 잠들기 어렵다. 그는 "잠을 청한다는 표현보다 누워서 체크리스트를 다시 훑는 시간에 가깝다"고 말했다.

2025년 11월 27일 새벽 1시 13분 우주로 향하는 누리호 4호기. 항우연 제공

2025년 11월 27일 새벽 1시 13분 우주로 향하는 누리호 4호기. 항우연 제공


아침 7시, 그는 평소와 다르지 않은 시각에 일어났다. 중요한 일정이 있는 날 습관처럼 면도를 꼼꼼히 했고, 아침 식사는 역시 평소처럼 넘겼다. 필요한 것은 평소와 같이 물뿐이었다.

숙소에서 발사체 조립동까지의 600m는 그의 '정리 시간'이기도 하다. 그는 매일 이 길을 걸으며 전날 발생했던 문제와 오늘 해야 할 점검을 천천히 되짚는다. 발사 당일 일정은 조립동에서 발사대를 둘러본 뒤, 발사임무통제센터(MDC)로 이동하는 순서로 이어진다.


예상치 못한 변수, '엄빌리컬 압력 센서'

카운트다운이 진행되던 밤 11시 무렵까지 모든 것은 예정대로였다. 추진제 충전, 발사대 점검, 통신 검증까지 모든 신호가 '정상'이었다. 발사 시각인 0시 55분을 향해 카운트다운은 조용히 흘렀다.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조립동에서 누리호와 함께 포즈를 취한 박종찬 단장. 항우연 제공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조립동에서 누리호와 함께 포즈를 취한 박종찬 단장. 항우연 제공


그러나 발사 약 40분을 앞둔 시점, MDC 내부의 공기가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발사대에서 들어온 '엄빌리컬 회수 압력 센서' 신호가 비정상 패턴을 보였기 때문이다. 박 단장은 즉시 정적을 깨고 팀에 지시를 내렸다.


"모두 그대로. 센서부터 다시 확인합니다."

발사대 엔지니어들은 공압 라인을 수동 검증하며 센서의 실제 '압력' 상태를 직접 확인했다. 결과는 다행이었다. 압력은 정상, 문제가 된 것은 센서 신호뿐이었다. 하지만 발사 자동운용(PLO) 진입 시간은 이미 어긋난 상태였다. 발사관리위원회는 신속히 판단을 내렸다.


"허용 시간창 마지막 구간인 1시 13분, 그 시각으로 간다."


MDC 안에서는 시계를 보는 모든 손목이 동시에 긴장했다. 박 단장은 그 순간을 이렇게 표현했다. "발사대는 언제나 변수를 던진다. 오늘은 그 시간이 조금 늦어졌을 뿐이다."

[발사대에서] 누리호의 '지상 0초'를 허락하는 사람, 박종찬 단장의 24시간

700개의 신호 사이로 흐르는 긴장…이륙 4초 전의 결정

카운트다운 10분 전, 발사 자동운용(PLO)이 다시 가동됐다. 한 번 가동되면 멈출 수 없는 절차였다. 화면에는 700개의 센서 신호가 초록빛으로 이어지고, 팀원들의 시선은 각각의 콘솔에 고정됐다.


엔진 점화 4초 전, 1단 엔진 압력이 급격히 상승하는 곡선이 떴다. 이 순간이 바로 박 단장이 항상 말하는 누리호의 '지상 0초를 허락하는 순간'이었다.


"추력 정상."


그는 단 한 단어로 결정을 내렸다. 지상고정장치(VHD)가 풀리고, 누리호는 새벽 1시 13분, 캄캄한 전남 고흥 하늘을 뚫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모든 위성이 분리됐다…박 단장의 숨이 멎는 16분
[발사대에서] 누리호의 '지상 0초'를 허락하는 사람, 박종찬 단장의 24시간

누리호는 이륙 후 2분 만에 1단을 분리했고, 3분 50여 초 뒤에는 페어링이 떨어졌다. 4분 30초 시점에는 2단이 분리됐다. 이 모든 과정이 실시간으로 MDC 화면에 표시될 때마다 박 단장의 손가락은 조금씩 떨렸다.


고도 300㎞를 지나며 3단 엔진이 안정적으로 추력을 유지한 순간, 다음 관문은 단 하나였다. 13기 위성이 모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제자리에서 떠나는지' 확인하는 일.


1시 31분, 주탑재체인 차세대 중형위성 3호의 분리 신호가 MDC 스피커에서 들렸다. 이후 20초마다 '띠-익' 하는 신호음이 반복됐다.

"2번, 3번 분리."

"4번, 5번……."


엔지니어들이 숫자를 불러가는 동안 박 단장은 말없이 화면만 바라봤다. 13개의 점이 모두 '녹색 안정'으로 바뀐 순간, 그는 처음으로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오늘은… 장비가 정답을 말해줬습니다."

27일 새벽 누리호 4차 발사 성공 이후 나로우주센터 발사임무통제센터(MDC)에서 박종찬 단장(헤드폰 낀 사람)이 동료와 얼싸안고 기쁨을 나누고 있다. 항우연 제공

27일 새벽 누리호 4차 발사 성공 이후 나로우주센터 발사임무통제센터(MDC)에서 박종찬 단장(헤드폰 낀 사람)이 동료와 얼싸안고 기쁨을 나누고 있다. 항우연 제공


발사가 끝나도 끝이 아니다

누리호가 우주로 향하는 동안 발사대팀은 즉시 움직였다. 화염으로 인한 구조물 손상 여부를 확인하고, 잔여 추진제 회수 절차를 시작했다. 배관 압력 감소와 냉각 과정도 계속됐다.


박 단장은 위성 분리 신호 기록을 정리해 우주항공청과 각 운영기관에 전달하는 업무를 이어갔다. 새벽 4시가 넘어서야 그는 숙소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는 말했다.


"누리호는 떠났지만, 발사대는 내일 다시 일어납니다. 다음 발사를 준비해야죠."


나로우주센터의 새벽은 그렇게 또 한 번의 밤을 넘기고 있었다.





고흥=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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