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가상자산 산업①]말라가는 국내, 확장하는 세계

거래소 매출 1조원 넘길때 지갑 사업자는 '45억'…"비정상적으로 편중"
"법안 늦어지면 해외 가상자산 사업자들이 산업 선점할 것"

국내 가상자산 산업이 제도 공백과 규제 불확실성으로 쇠퇴 조짐을 보이고 있다. 2021년 특금법(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신고제가 도입된 이후 신고·영업을 포기한 사업자가 계속 늘며 생태계의 축소가 가시화됐다. 반면 미국·유럽연합(EU)·일본 등은 스테이블코인·토큰화 등 핵심 분야를 제도권으로 끌어들이며 산업 고도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위기의 가상자산 산업①]말라가는 국내, 확장하는 세계

28일 가상자산업계에 따르면 특금법 시행 후 2022년 6월30일 기준 신고된 가상자산사업자는 거래소 26개사, 지갑 및 보관업자 9개사 등 총 35개사다. 하지만 올해 상반기 기준 거래소 17개사, 지갑 및 보관업자 8개사 등 25개사에 그쳤다. 지난 3년간 신고·영업을 포기하거나 폐업한 사업자가 약 10곳에 달하는 셈이다.

현재 가상자산사업자 신고제의 경우 대체불가토큰(NFT) 매매, 가상자산 예치 및 랜딩(대여), 탈중앙화금융(DeFi) 서비스 등은 제외된다. 가상자산 업계는 신고제 제외 대상 업체들까지 고려하면 사업을 포기한 업체가 더 많을 것으로 예상했다.


가상자산 거래소와 지갑 및 보관업자의 실적을 보면 비정상적인 시장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올해 상반기 기준 8개 보관·지갑 사업자의 매출액은 4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3% 감소했다. 영업손실은 118억원으로 손실 폭이 1억원 더 증가했다. 반면 가상자산 거래소의 실적은 견조했다. 올해 상반기 17개사의 거래소의 매출액은 1조1487억원, 영업이익은 6158억원이었다.


정구태 인피닛블록 대표는 "투자 수요, 기술력, 인재는 풍부하지만 규제 미완성과 정책 방향성 부재로 인해 산업 구조가 비정상적으로 편중되고 있다"며 "그 결과 원화 거래소 중심의 개인 매매 시장만 과도하게 비대해졌고, 커스터디(Custody, 보관 및 운용서비스) ·인프라·스테이블코인·실물자산토큰화(RWA) 등 실물경제와 연결되는 핵심 분야는 사실상 정체됐다"고 지적했다.

황석진 동국대학교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도 "현재 국내 가상자산 산업은 겉으로는 활황이지만 구조적으로는 위기에 놓여 있다"며 "시장은 활기를 띠고 있지만, 핵심 제도 부재와 2단계 법안 지연으로 산업의 방향성이 불투명하다"고 설명했다.


국내 시장이 2017년 9월 마련된 가상자산공개(ICO) 금지 등 규제로 확장에 제동이 걸린 사이 글로벌 시장에서는 알트코인이 기술 기반 실사용 중심으로 진화하고 있다. 단순 투자 대상이 아니라 각자 목적을 가진 블록체인 인프라로 역할을 확대한 것이다. 예컨대 리플(XRP)은 국제 송금·은행 간 결제 네트워크에 특화하며 금융기관 간 실거래에 활용되고 있다. 또 이더리움은 디파이·NFT·게임·탈중앙자율조직(DAO)·RWA까지 블록체인 경제 전반을 지탱하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스테이블코인 역시 결제·송금 영역에서 빠르게 확장하며 사실상 가상자산 기반 지급수단으로 부상하고 있다.


ICO뿐만 아니다. 커스터디 사업자들도 기술적 인프라를 구축한 상태지만 정부의 가이드라인 부재와 법적 제약으로 묶여있는 상태다. 또한 국내 가상자산 사업자들은 거래 수수료에만 집중하고 있다. 올해 3분기 업비트의 매출액 중 수수료 매출 비중은 97.94%에 달한다. 반면 해외거래소인 코인베이스의 경우 수수료 비중은 59%에 그친다. 글로벌 가상자산 사업자들이 사업 다각화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가운데 국내만 한정된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위기의 가상자산 산업①]말라가는 국내, 확장하는 세계

현재 업계는 가상자산 2단계 법안만을 바라보고 있다. 2단계 법안에는 스테이블코인 규제 체계 마련, 가상자산사업자 진입·영업 규제 강화, 시장 투명성 제고를 위한 공시·상장 제도 도입 등이 포함돼 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자에게는 인가제 도입, 준비자산 관리 의무, 이용자 상환권 보장 등이 부과된다. 이와 함께 가상자산사업자 업무 범위가 자문업, 평가업 등으로 세분화된다. 또한 가상자산 상장 규정 마련과 자본시장 수준의 공시제도 등의 내용이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즉 2단계 법안에 따라 업계에서 능동적으로 사업에 나설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는 것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박사는 "법안 통과와 시행령 마련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며 "(법제화가 늦어질 경우)해외의 가상자산 관련 기업들의 시장 선점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유현석 기자 guspo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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