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가 판매한 차에서 수집한 데이터로 자율주행을 연구하는 것처럼 우리나라 제조사들도 판매한 차의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된다. 도시 전체를 자율주행 실증구역으로 지정해 데이터를 수집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미국이나 중국처럼 자율주행을 위한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한 안들로, 우리나라의 기술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본지 20일자 16면 참고>
국토교통부 등 관계부처는 26일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성장전략 TF 회의를 열고 이러한 내용을 담은 자율주행차 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논의했다. 양질의 데이터를 다량으로 확보하기 위해 규제의 벽을 낮추기 위한 조치다. 현재는 기업이 연구개발 목적으로 영상데이터를 수집·활용하려면 미리 지정한 차량으로 수집한 후 가명처리를 거쳐야 한다.
LA 시내에서 자율주행 중인 테슬라 모델3. 연합뉴스, 로이터
앞으로는 개인정보보호법·자율주행자동차법을 개정해 가명처리하지 않은 원본 영상을 활용하는 걸 허용키로 했다. 원본 영상의 경우 인식 정확도가 최대 25% 올라간다. 올해 9월 열린 규제 합리화 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이같은 안을 제안한 바 있다.
실증·연구개발용 자율주행차로만 가능했던 데이터 수집도 차주의 동의를 얻은 개인 차량까지 확대한다. 현재 국내에 가능한 실증·연구개발용 자율차는 132대 수준으로, 데이터 수집량이 제한적이다. 반면, 테슬라의 경우 차주가 동의한 차량으로부터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테슬라가 전 세계에서 판매한 180만대 정도로, 실시간으로 누적되는 데이터 규모도 방대한 수준으로 알려졌다.
내년부터는 한 도시 전체를 시험용 자율주행차가 다닐 수 있는 실증도시로 지정한다. 웨이모의 주력 테스트베드인 미국 피닉스에선 서울보다 넓은 815㎢ 지구에 자율주행차가 다닌다. 중국 대표 자율주행 도시 우한은 3000㎢에 달한다. 우리 정부는 우선 100대 이상을 목표로 대기업과 소프트웨어 스타트업까지 협력하는 고유의 모델을 갖추기로 했다. 아울러 농어촌 등 대중교통 취약지역에서 자율주행 버스 운행을 늘리기로 했다. 데이터 축적과 교통취약지역 서비스를 높이기 위한 이중포석이다.
운수사업자도 자율주행차의 임시운행허가를 받게 된다. 버스 기사가 관련 교육을 받으면 개발업체 직원 없이 직접 운행이 가능해진다. 지금은 자율주행 개발업체만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핸들·페달이 있는 유형만 가능했던 신속허가(패스트트랙) 대상도 전 유형으로 넓힌다.
교통약자 보호구역에서는 업체가 스스로 안전계획을 마련하면 임시운행이 가능해진다. 현재는 임시허가를 받은 자율차도 보호구역에서 수동으로 전환해야 한다. 시속 30㎞ 이하로 운행한다거나 출·퇴근, 등·하교 시간을 제외하고 운행하는 식의 안전계획을 짜면 된다. 시범운행지구의 지정도 국토부 장관에 이어, 시·도지사도 할 수 있도록 했다. 내년 상반기까지 원격제어 특례규정을 마련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사고 등 비상상황에서 원격제어가 필요할 때가 있는데, 현재는 주차할 때만 가능하다.
자율차 운행관리 의무를 맡아 법적 책임 주체의 개념도 도입한다. 운전자가 없는 레벨4 이상 자율차는 제재 대상이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을 감안했다. 사고가 났을 때 손해배상책임 분담구조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국토부와 교통안전공단, 보험업계 등 관계기관이 사고책임 TF를 내년부터 가동한다. 자율차 상용화로 택시업계 반감이 커진 점을 고려해 정부와 각 이해관계자로 구성된 사회적 협의체는 당장 다음 달부터 운영에 들어간다. 제조물책임법을 개정해 차량 결함 추정요건을 완화하는 한편 제조사가 영업상 비밀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도 같이 마련키로 했다.
지난달 14일 서울 동대문구 동대문중학교 부근 도로에서 자율주행버스가 운행하고 있다. 이날부터 운행을 시작한 동대문 자율주행버스 '동대문A01'은 장한평역에서 경희의료원까지 이어지는 왕복 15㎞ 구간, 총 23개 정류소를 운행한다. 연합뉴스
이밖에 내년부터 자율차 전용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지원하고 2029년까지 인공지능(AI) 학습센터를 지어 기업의 연구개발 활동을 돕는다. AI로 학습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스스로 판단·제어하는 E2E 기술개발을 지원하고 자율차에 특화된 플랫폼·반도체 생산망도 갖추기로 했다. 자율주행 등 첨단분야 인재양성을 원하는 대학은 정원을 늘려 배정해줄 방침도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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