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술 시장이 양극화가 심해진 것 같다. 전반적으로 침체된 분위기인데, 그 속에서 유명 작가 작품만 선택적으로 주목받는 느낌이다."
서울의 한 갤러리에서 관람객들이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최근 만난 한 갤러리 큐레이터는 이렇게 현 상황을 털어놓았다. 시장에서 거품이 빠지면서 구매자들은 확실한 소구력을 지닌 작품만 찾는다는 것이다. 미술에 대한 관심은 예전보다 높아졌지만 지출은 더욱 신중해졌고, 덕분에 인지도가 높은 작품에만 문의가 몰리다 보니 경기 회복을 논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분석이다.
25일 서울대학교 경영연구소와 파라다이스문화재단이 발간한 '코리아 아트 마켓(Korea Art Market) 2025'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0월 기준 주요 아트페어의 총거래액은 약 1680억원으로 전년 대비 12% 감소했다. 반면 참여 갤러리와 방문객 수는 모두 증가했다. 특히 2025 화랑미술제의 VIP 프리뷰 관람객은 6100명으로 전년 대비 30% 늘었고, 키아프·프리즈 서울(Kiaf·Frieze Seoul)은 전체 관람객 12만명을 돌파하며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관람객 증가는 곧 거래 증가로 이어졌지만, 거래액까지 확대되진 않았다. 초고가 작품 거래가 줄었다는 방증이다. 10억원대 이상의 거래가 감소하고, 1억~5억 원대 중·저가 작품의 거래가 늘어났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보고서에서도 응답자의 62.3%가 "작품 구매보다는 새로운 작가를 발견하기 위해 방문했다"고 답했으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콘텐츠 제작(42%), 토크 프로그램·퍼포먼스 참여(31%) 등 체험형 활동이 구매 동기보다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이처럼 아트페어가 매출 중심의 행사에서 체험 중심의 플랫폼으로 변모하면서 성과 측정 지표(KPI) 역시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5년 Frieze Seoul의 평균 체류 시간은 2.8시간으로 2023년보다 45% 늘었고, 관람객의 38%가 "예전보다 더 오래 머물렀다"고 답했다. 단순 관람을 넘어 '체류형 문화소비'가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같은 흐름은 경매 시장에서도 나타난다. 2025년 미술 경매 시장은 2023년과 2024년에 이어 3년 연속 하락세다. 예술경영지원센터(KAMS) 자료에 따르면 2024년 하반기부터 2025년 상반기까지의 연간 낙찰 총액은 약 1026억원으로, 전년 1354억원 대비 24.2% 줄었다. 코로나19로 소비 시장이 얼어붙었던 2020년의 1201억원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다만 2025년 상반기 낙찰 총액은 약 565억원으로 직전 반기 대비 22% 증가하며 미세한 회복세를 보였고, 반기 낙찰률도 45.8%에서 50.4%로 상승했다. 이를 종합한 연평균 낙찰률은 48.1%로, 전년(47.6%) 대비 소폭 개선됐다.
최근에는 분위기가 조금 달라지고 있다. 10억원 이상의 고가 작품이 잇따라 낙찰되며 시장에 훈풍이 감지되는 것. 지난달 서울옥션에서 야요이 쿠사마의 'Infinity Nets(SHOOX)'가 19억원, 케이옥션에서는 이중섭의 '소와 아동'이 35억2000만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미국 뉴욕 크리스티 '20세기 이브닝 세일'에서는 김환기의 '19-VI-71 #206'(1971)이 840만 달러(약 123억원)에 낙찰됐고, 24일 서울옥션에서는 샤갈의 '꽃다발'이 94억원으로 국내 최고가를 경신했다.
고가 작품 거래가 이어지자 미술 시장이 바닥을 찍고 반등 흐름을 타는 것이 아니냐는 기대감도 확산되고 있다. 서울옥션 관계자는 "상반기에는 1억~5억 원대 작품을 주로 소싱했지만 최근에는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며 "고가 작품이 거래되기 시작하면서 시장 심리가 바뀌고 있음을 체감한다. 30억원대에 머물던 낙찰 총액이 9월에는 49억원, 10월에는 53억원까지 확대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여전히 신중한 시각도 존재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팔리는 작품을 보면 결국 유명 작가의 대표작일 뿐, 미술 시장 전체가 살아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젊은 신인 작가들의 작품은 여전히 유찰 비율이 높다. 거품이 빠지면서 시장이 건강해지는 측면도 있지만, 양극화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