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 금융기관이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서두르고 있어 우리나라도 큰 흐름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조속히 관련 법규를 마련하고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20일 한국산업은행 미래전략연구소의 '금융권의 스테이블코인 추진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 호주 등 주요 선진국 금융기관들은 수년 전부터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해 실제 거래에 활용하는 등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 등 특정 자산과 1대1로 연동해 가치 안정성을 추구하는 가상자산이다. 테더(USDT)와 USD코인 등이 대표적이다.
미국의 JP모간은 2020년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일종인 JPM코인을 도입해 기업 등 제한된 고객을 대상으로 연중무휴 실시간 결제에 사용하고 있다. 달러 예치금을 스테이블코인으로 디지털화해 거래 속도를 단축하고 24시간 즉시 결제를 지원하는 등 기존 은행의 업무 시간·장소 제한을 극복하는 데 활용 중이다.
프랑스의 소시에테제네랄도 2023년 유로화 스테이블코인인 EURCV를 공개해 그룹 내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사용하다가, 점차 기업 고객 등으로 이용 대상을 확대하고 있다. 호주의 호주뉴질랜드은행(ANZ)도 2022년 호주달러와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을 도입해 탄소배출권 거래 등 기관 간 결제에 활용하고 있다. 일본의 미쓰비시와 미즈호은행 등 대형은행들도 엔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실증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국가 차원에서도 스테이블코인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규제를 마련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7월 스테이블코인 규제 법안인 '지니어스 액트'를 통과시켜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에 편입했다. 유럽연합(EU)도 지난해 가상자산시장법(MiCA)을 시행해 스테이블코인의 발행 주체와 준비자산 요건을 규정했다.
이들 법안은 공통적으로 ▲스테이블코인의 가치를 유지하는 준비자산(담보)을 최소 1대1 이상으로 보유 ▲준비자산은 현금·예금 등 유동성이 높은 자산으로 구성 ▲결제용 발행인 만큼 이자 지급은 불가 등을 주요사항으로 규정했다.
보고서는 선진국 금융기관들이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결제·송금 방식의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관련 인프라를 도입하지 않으면 금융 생태계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 발행 시점을 앞당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서대훈 한국산업은행 미래전략연구소 연구원은 "소비자가 한번 익숙해지면 다른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으려는 락인(lock-in) 효과를 고려해 해외 금융기관들이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외 주요 금융기관의 빠른 도입 속도와 달리 국내에서는 아직 관련 법규 제정도 이뤄지지 않아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국내에서는 국민은행·신한은행·우리은행·농협은행 등 주요 6개 은행과 금융결제원이 스테이블코인 공동 발행을 위한 컨소시엄을 구성해 검토하는 등 은행 중심의 발행 논의가 초기 단계에서 진행되고 있다.
서 연구원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단기적으로 기관 간 지급결제 등에서 사용되고, 소규모 발행을 통한 실증 테스트가 이뤄질 것으로 보여 수요가 제한적일 것"이라며 "본격적인 도입을 위해서는 해외 사례처럼 관련 법규의 조속한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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