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주문해도 4년 뒤에야 받는다…전 세계가 'K전력' 찾는 이유[전력산업대전환]③

LS, 韓데이터센터 70% 공급
AI 발전 속 배전설비 수요 폭등
노후 인프라 교체 수요 더해져

편집자주전력산업이 자동차, 반도체 이어 우리 산업의 효자종목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력은 오랫동안 산업 분야에선 '조력자' 역할에만 그쳤다. 하지만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전기차, 재생에너지 확산으로 전력 수요가 폭증하면서 해외에서도 찾는 K산업의 주역이 된 것이다. LS일렉트릭 등 국내 전력기기 4사가 확보한 일감만 33조원어치다. 수출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성장 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전력업계의 관심은 선순환 구조를 어떻게 확보하냐에 쏠렸다. 보다 효율적인 송전을 위해 직류 관련 기술을 확보하는 게 핵심과제가 됐다. 전력산업 대전환을 위해 우리 기업들이 당면한 과제를 짚었다.

"지금 주문해도 4년 뒤 공급 가능합니다."


전력 인프라 수요가 급증하면서 변압기 등 핵심 전력 기기의 공급 병목 현상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변압기 등을 미리 만들어 판매하는 게 아니라 고객 주문에 맞춰 제작하는 산업 특성으로 제작 기간이 크게 늘어난 영향이 크다.

미국 버지니아주 애시번에 위치한 데이터센터. 연합뉴스.

미국 버지니아주 애시번에 위치한 데이터센터. 연합뉴스.


코트라(KOTRA)의 '미국 변압기 시장 동향'에 따르면 미국의 변압기 제조 리드타임은 최근 2년간 계속 늘어나 일반 변압기는 최대 32개월 대형 변압기는 최대 52개월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전력 기기는 설계부터 절연·조립·시험까지 공정이 복잡해 납기가 길다. 국내 전력업체 관계자는 "데이터센터·친환경 에너지 산업 확산으로 변압기 주문량이 급증했다"며 "현재 주문 후 납기까지 3~4년이 걸리고 지금 주문해도 4년 뒤 겨우 납품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변압기 생산 병목현상은 현장에서 필요한 배전설비까지 확산되고 있다. 대형 데이터센터는 고용량 전력을 직접 끌어와 내부 장비에 나눠 공급해야 한다. 이 때문에 변압기뿐 아니라 차단기·수배전반 등 배전설비의 의존도도 함께 커진다. 경기도 용인에 올해 준공된 64㎿급 데이터센터에는 LS일렉트릭 배전설비가 적용돼 있다. 변전소에서 154㎸ 전압을 받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구조로 초고밀도 서버 설비의 전력 안정성을 뒷받침한다. 글로벌 데이터센터 확장 속도가 빨라지면서 이런 고사양 전력 인프라 전반에 대한 수요가 동시 증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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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산'이라는 브랜드도 관련 기업 실적에 큰 도움이 된다. 중국산 전력 장비가 글로벌 공급망에서 점차 배제되면서 대체 공급처 확보가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가 최근 보안 우려를 이유로 중국산 해저케이블 사업 참여를 제한한 사례도 이런 흐름을 뒷받침한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안보 이슈로 공급처에서 빠지고 있지만 유럽 회사는 생산능력을 크게 늘리지 못하고 있다"며 "세계적으로 공급 병목이 심화하는 가운데 'K전력'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들도 글로벌 생산기반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LS일렉트릭은 지난 4월 미국 텍사스주 배스트럽에 북미 사업 지원 캠퍼스를 완공했고 LS전선은 미국 버지니아주에 약 1조원을 투입해 해저케이블 공장을 짓고 있다. 지주사 LS 역시 인도 시장 진출을 위해 합작법인 설립을 결정했다. LS일렉트릭 관계자는 "지난해 북미에서 약 1조3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며 "배스트럽 캠퍼스와 유타주 시더시티의 자회사를 양대 생산 거점으로 활용해 글로벌 공급 능력을 넓힐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력 기기 병목이 고착화하는 상황은 국내 기업의 해외 증설 필요성도 키우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금 주문해도 4년 뒤에야 받는다…전 세계가 'K전력' 찾는 이유[전력산업대전환]③

글로벌 시장에서도 공급 부족 요인은 계속 누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르도르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세계 전력 기기 시장 규모는 올해 331억6000만달러(약 49조원)에서 2030년 420억6000만달러(62조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순전력소비량 증가로 발전시설 용량이 확대되는 추세도 병목 심화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미국에너지관리청(EIA)은 2022년부터 2050년까지 전 세계 발전시설 용량이 연평균 2.0%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미주와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각각 2.1%, 2.5% 증가가 예상돼 송·배전 인프라 확충 수요가 더 빠르게 늘 것으로 전망됐다.





박준이 기자 giv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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