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국어 영역 17번 문항을 둘러싸고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문가들의 주장이 제기됐다. 철학과 교수와 유명 강사까지 동참하면서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경복고등학교에 마련된 고사장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19일 교육계에 따르면 이충형 포항공과대학교(포스텍) 철학과 교수는 한 수험생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 "수능 국어 시험에 칸트 관련 문제가 나왔다고 하기에 17번 문항을 직접 풀어본 결과 답이 없어 보였다"고 주장했다.
올해 수능의 고난도 문항으로 꼽히는 문제의 17번은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인격 동일성' 개념을 다룬 지문이다. 두뇌에서 일어나는 의식을 스캔해 프로그램으로 재현한 경우 본래의 자신과 재현된 의식은 동일한 인격이 아니라는 '갑'의 주장을 제시한 뒤 이를 이해한 반응으로 가장 적절한 것을 판단하는 문제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정답을 3번인 '칸트 이전까지 유력했던 견해에 의하면 '생각하는 나'의 지속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갑의 입장은 옳지 않겠군'이다.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17번 문항.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하지만 이 교수는 갑의 입장이 옳기에 3번이 정답이 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지문에 등장하는 '칸트 이전 견해'는 영혼이 '단일한 주관'으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지속한다는 전제를 담고 있는데 프로그램으로 의식이 재현되면 '단일한 주관'이라는 조건을 충족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갑의 주장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특히 "'a=b이고 a가 C라면 b도 C다'를 통해 풀 수 있는 문제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잘못된 풀이"라고 말했다. 그는 "갑은 '생각하는 나'라는 개념만 언급할 뿐 영혼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않아서 '생각하는 나'와 '영혼'의 연결고리가 필요하다"며 "이를 영혼과 연결하는 표현은 지문과 보기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문제 출제자가) 'a=b이고 a가 C면, b도 C다'는 논증을 너무 쉽게 생각한 듯하다"면서 "굉장히 복잡한 개념이 사용된 상황이어서 이런 논증이 간단하게 적용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개념 자체도 고등학교 학생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며 "저 역시 지문을 이해하는 데만 20분이 걸렸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국어 17번 문항과 관련이 있는 '수적 동일성' 개념을 이용해 쓴 수정란과 초기 배아의 지위에 관한 논문으로 '2022년 최고의 철학 논문 10편'에 선정된 바 있다.
독해·논리 강사로 알려진 이해황씨도 같은 취지의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논란에 힘을 보탰다. 이 강사는 "이 교수님의 메일을 받고 검토한 결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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