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화성에서 직원 300명 규모의 반도체 부품 제조 업체를 운영하는 김모 대표는 얼마 전 서울의 한 노무법인에서 상담받았다. 회사 자체 역량만으로는 내년 3월 시행되는 노란봉투법과 관련한 상황에 대응하기 어렵겠다는 판단에서다. 김씨의 사업장에는 노동조합이 없어 지금까지 이렇다 할 노사 분쟁은 경험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김 대표의 우려가 높아지는 건 하청업체에 결성돼있는 노조가 근로 여건을 둘러싸고 벌일 쟁의의 가능성 때문이다. 김 대표는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 하청업체 근로자들이 원청 경영인을 상대로 파업을 할 수도 있다는데, 이럴 경우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전혀 몰라 막막하다"면서 "아예 노무법인과 계약을 맺고 컨설팅을 받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1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 시행이 약 넉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예기치 못한 경영 리스크에 대한 대응책을 찾으려는 기업들의 움직임이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특히 사내에 별도의 노무·법무 대응 역량을 갖추지 못했거나 분쟁 상황을 겪어보지 않은 중소기업들이 고민 끝에 노무사에게 손을 내미는 사례가 급증하는 분위기다. 하도급 구조가 흔한 제조·건설·IT 분야 중소기업들의 컨설팅 요청이 특히 많으며 하도급 계약서의 내용에 쟁의의 여지는 없는지, 있다면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등을 검토해달라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고 한다. 비교적 이름이 난 노무법인의 경우 불과 하루 이틀 만에 수십 건의 상담이 몰려들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송파구 소재 A 노무법인의 김모 대표 노무사는 "기존엔 기업과 근로자 간의 근로계약서를 검토해 달라는 요청이 대부분이었다면, 최근엔 협력사와의 도급 및 파견 계약서에서 노란봉투법이 명시한 '사용자성'에 적용될 요소가 있는지를 살펴달라는 요청이 많다"며 "노란봉투법에 대한 업계의 관심과 우려가 높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을 원청으로 두고, 생산력을 유지하기 위해 재하청을 주는 중소기업에는 노란봉투법의 난도가 더욱 높아진다. 하청업체 관리를 제대로 못 해 분쟁에 휘말리면 원청 기업과의 거래가 끊어질 수도 있어서다. 이에 따라 하청 근로자들의 돌발 쟁의 가능성뿐 아니라 원청기업과의 거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도급 계약서를 재점검하려는 움직임도 잇따르고 있다. 계약서상 원청이 '사용자'로 비쳐질 수 있는 위험을 사전에 제거해 최악의 상황은 막아보려는 것이다.
노란봉투법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어 본격적인 상담에 애를 먹는 사례도 적지 않다. 윤종우 노무사는 "내용이 복잡하다 보니 '뉴스에서 많이 봤는데,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하는 분이 많다"며 "전문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자체적으로 대응하는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외부 컨설팅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정보 접근성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정부의 세부 지침이 마련되지 않아 이러한 현장 자문에도 한계가 뚜렷하다는 점이다. 노란봉투법은 사용자 범위와 노동쟁의 대상을 확대해 원청의 교섭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다. 그러나 사용자성 판단 기준이나 쟁의행위 범위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없어 기업들의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안치현 노무사는 "고용노동부의 가이드라인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고 교섭 창구 단일화 시행령도 정비되지 않아, 법률 전문가들 사이에서조차 노란봉투법에 관한 의견이 나뉘는 상태"라며 "가뜩이나 대응 여력이 떨어지는 중소기업은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노무사는 "지금처럼 법안만 나와 있는 상황에서는 기업들의 요청에도 보수적으로 조언해줄 수밖에 없다"며 "법률 자문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도 참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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