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투자 거품 우려가 확산되는 가운데 글로벌 큰손들이 엔비디아 지분을 잇달아 처분하고 있다. 월가 주요 투자자들 역시 기술주를 중심의 증시 고평가를 경고하고 있어, AI 투자 사이클이 정점을 찍은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커지는 분위기다.
페이팔과 팔란티어를 창업한 억만장자 투자자 피터 틸. 블룸버그
17일(현지시간) 페이팔과 팔란티어 창업자인 억만장자 투자자 피터 틸이 운영하는 틸 매크로 펀드가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는 보유 중이던 엔비디아 주식 53만7742주를 지난 7~9월 사이 모두 매각했다. 이 기간의 엔비디아 평균 주가를 적용하면 매각 규모는 약 1억달러(약 146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틸은 엔비디아 외에도 테슬라 지분을 종전 27만2613주에서 6만5000주로 많이 줄였다. 반면 애플 주식은 7만9181주, MS 주식은 4만9000주를 신규 매수하며 포트폴리오를 재편했다. AI 대장주인 엔비디아를 포트폴리오에서 완전히 비우면서 시장에서는 이를 AI 거품 경고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앞서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일본 소프트뱅크 역시 지난달 엔비디아 지분 58억3000만달러(약 8조5250억원)를 전량 매각했다. 영화 '빅쇼트'의 실존 인물이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한 투자자 마이클 버리도 엔비디아와 팔란티어에 대한 공매도 포지션을 공개했다. 주요 투자자들이 잇달아 엔비디아 매도-헤지에 나서면서 AI 투자에 대한 불안 심리가 가중되는 모습이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AI 개발에 필요한 막대한 자본 지출이 장기간 높은 수익성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론이 커지고 있다. 특히 엔비디아가 지난달 세계 첫 시가총액 5조달러(약 7310조원) 기업에 등극한 뒤, 월가에서는 AI 낙관론과 거품론이 팽팽히 맞서며 증시가 등락을 반복하는 롤러코스터 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채권왕'으로 불리는 제프리 건들락 더블라인 캐피털 최고경영자(CEO)도 증시 과열을 지적하며 경계심을 높였다. 그는 이날 블룸버그 팟캐스트 '오드 라츠'에 출연해 "미국 주식시장의 (현재) 건강 상태는 내 경력 전체를 통틀어 가장 취약하다"며 "시장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투기적이고, 이런 투기 장세는 엄청나게 높은 수준까지 치솟고 있다. 이런 일이 매번 일어난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큰손들이 연일 AI 과열을 경고하며 포지션을 축소하는 가운데, 오는 19일 발표될 엔비디아 실적은 향후 시장 흐름을 가를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베어드의 로스 메이필드 투자 전략가는 "엔비디아에 대한 수요가 여전히 존재하고 둔화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확인해야 한다"면서 "만약 칩 수요 전망이 소폭이라도 낮아지면 시장은 이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몬티스 파이낸셜의 데니스 폴머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엔비디아가 호실적과 상향된 실적 전망을 내놓는다 해도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라며 "끝이 없는 AI 자본 지출에 대한 우려는 더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가 구글 모회사 알파벳 지분을 43억달러(6조2880억원)에 신규 취득한 사실이 공시되면서 이날 알파벳 주가는 3.11% 뛰었다. 그동안 가치주 중심으로 투자해 온 버크셔 해서웨이가 대형 성장 기술주 투자를 확대해 나갈지에 시장의 관심이 쏠린다. 엔비디아는 1.88% 내렸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