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장벽 높이는 英…난민 영주권 부여 5년→20년

본국 안전하면 돌아가야…인권법 적용 더 깐깐

영국 노동당 정부가 난민이 영주권 취득하는 데 필요한 기간을 기존 5년에서 20년으로 대폭 늘리는 등 망명 및 이민 빗장을 대폭 올린다.


17일(현지시간) BBC 방송과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샤바나 마무드 영국 내무부 장관은 하원에서 '질서와 통제 회복'이라는 제목의 이민 및 망명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샤바나 마무드 영국 내무부 장관 AFP연합뉴스

샤바나 마무드 영국 내무부 장관 AFP연합뉴스


이번 방안은 영국에 머물 권리가 없는 이주민을 더 많이, 더 빨리 영국에서 내보내는 데 집중한다는 취지다. 마무드 장관은 "망명 신청에 실패하면 그들을 내보내는 데 훨씬 더 강경한 접근법을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안에 따르면 난민은 영구적 지위를 얻는 대신 2년 6개월마다 망명 자격을 다시 심사받아야 한다. 본국이 안전하다고 판단되면 돌아가야 한다. 망명 자격을 얻어도 영국 시민이 되기까지 더 오랜 기간을 기다려야 한다. 영주권 신청 자격은 20년 뒤부터 주어져 현재 5년에서 4배 길어진다.


망명을 거부당한 사람은 이의 제기를 반복적으로 할 수 없게 된다. 현재 망명 신청 관련 이의 제기 5만건 이상이 적체돼 최소 1년간 대기해야 한다.


미성년 자녀가 있는 가족의 출국도 확대한다. 정부는 "현재 가족의 (본국) 귀환이 우선시되지 않고 있으며 망명 신청자들은 미성년 자녀가 있다는 사실을 퇴거 거부에 악용한다"며 "모든 가구에 본국 귀환을 위한 재정 지원을 제공하고 이를 거부하면 강제 귀환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주민이 '의심스러운 관계'를 이용해 영국에 머무는 것을 막기 위해 유럽인권협약(ECHR)을 비롯한 인권 관련 법률에 대한 해석도 바꾸기로 했다. 가족의 삶을 존중받을 권리를 규정한 ECHR 제8조와 같은 조항은 직계가족에 대해서만 체류의 근거로 쓸 수 있도록 한다.


정부는 난민 신청자들에게 주택과 재정 지원을 제공하는 법률도 개정한다는 방침이다. 스스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난민에겐 지원 제도를 폐지한다는 방침이다.


앙골라, 나미비아, 콩고민주공화국(DRC)이 자국 출신으로 송환이 결정된 불법 이주민과 범죄자를 받지 않는다면 비자 발급을 중단하겠다고도 경고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성명에서 "늘어나는 분쟁 속에 점점 더 불안해지고 변동성이 커지면서 전 세계에서 이동이 늘고 있다"며 "우리 망명 체계는 이에 대비가 되지 않았고, 점점 더 우리 사회에 부담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에서 이민은 경제와 함께 표심을 결정하는 핵심 현안이다. 지난해 4월~올해 3월 1년간 영국에 망명을 신청한 사람은 10만9343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17% 늘었다. 정부가 이민 정책을 강화하면서 순유입 이주민 수는 지난해 6월까지 1년간 43만1000명으로, 전년 동기(90만6000명)의 절반으로 줄었다.


집권 노동당 일각에서는 이번 방안에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더타임스는 현재까지 노동당 하원의원 17명이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시했으며, 그중에는 당내 온건파도 상당수라고 전했다. 스텔라 크리시 하원의원은 "노동당의 가치에 기반을 두면서도 국경을 통제할 수 있는 더 나은 방식이 있다"고 말했다.


강경한 망명 정책에 대해 일각에선 우익 포퓰리즘 성향의 영국개혁당에 밀리는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앨릭스 노리스 내무부 부장관은 이날 오전 취재진으로부터 '영국개혁당식 언어를 쓰는 것이냐'는 질문을 받자 "혼란에 빠진 망명 정책을 다루는 언어를 쓰는 것"이라며 "우리 국경을 안전하게 하고 현행 망명 시스템을 제대로 다루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오수연 기자 sy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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