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맥주 시장이 위축된 가운데 '고(高)도수' 맥주는 뚜렷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논알코올 주류와 하이볼 등으로 수요가 분산된 가운데 한 잔으로 충분한 만족감을 주는 높은 도수의 맥주가 가성비 주류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14일 시장조사기업 엠브레인 딥데이터의 구매 트렌드 분석에 따르면 올해 9월 기준 최근 1년간 전체 맥주 시장 구매 추정액은 2조1655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조3292억원) 대비 7.0% 감소한 결과를 보였다. 소비자들의 수요가 논알콜 주류, 하이볼 등으로 분산되고 있는 동시에 주요 맥주 제품 가격 인상에 대한 부담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짐작된다.
맥주 시장 전반의 성장세가 주춤한 가운데 고도수 맥주는 빠르게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다. 같은 기간 판매된 고도수 맥주의 구매 추정액은 391억원으로, 전년 동기(345억원) 대비 13.5%의 신장률을 기록했다. 경기 침체로 전체 주류 소비가 위축된 상황에서 고급 주류보다 가격 부담이 적고, 일반 맥주보다 높은 도수로 빠른 만족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가성비 있는 선택지로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다.
고도수 맥주는 통상 알코올 도수 7도(%) 이상의 맥주를 말한다. 국내에서 고도수 맥주에 대한 명확한 법적 분류 기준은 존재하지 않고, 시장 관행에 따라 6~7% 구간은 세션 IPA보다 강한 스트롱(Strong) 스타일로 분류되고, 8~12%대는 임페리얼(Imperial), 더블 IPA, 임페리얼 스타우트(Imperial Stout) 등 고도수 프리미엄 세그먼트로 취급된다.
특히 20대 젊은 세대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연령별 구매 데이터를 살펴보면 고도수 맥주 시장은 50·60대 남성의 구매 추정 신장률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40.1%, 43.2%로 시장 성장을 주도했지만 20대 여성의 수요도 35.5% 늘어 20대 남성(-21.9%) 대비 뚜렷한 증가세를 보였다. 규모 자체는 크지 않지만 높은 도수를 즐기는 문화가 젊은 층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눈에 띄는 대목이다.
고도수 맥주 시장의 성장은 '헬시 플레저(Healthy Pleasure)' 열풍에 따른 저도주·논알콜 주류에 대한 수요 증가와 더불어 일어났다는 점에서 소비자들의 취향이 다변화된 결과로 풀이된다. 20대 여성층의 소비 증가도 일반 맥주와 비교해 도수는 높지만 소주처럼 독하지 않고, 위스키보다는 가격 측면에서 부담이 낮다는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선 소비자들의 강한 풍미와 프리미엄 제품에 대한 선호 등을 토대로 성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오프라인 바나 펍에서 배럴 에이징 제품 등의 판매가 늘어나고 있다"며 "하이볼과 위스키 수요가 고도수 맥주로 일부 분화했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만 가격대가 일반 라거 맥주 대비 2~3배 높은 제품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경기 둔화에 민감하다는 점은 약점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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