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업인력공단이 실시한 한 국가전문자격의 최종 시험에서 추상적인 평가 기준으로 합격률이 조정됐다는 의혹이 나오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10점 만점 중 6점 이상 득점하게 된다면 모두 합격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지만, 합격률이 20%대에 그치면서 인위적으로 조작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시험에 탈락한 수험생들은 '최종 시험에서 추상적 평가표'와 '협회와 유착 의혹' 등을 토대로 공단의 시험에 대한 공정성을 추궁하고 있으나, 공단은 평가와 채점은 면접위원의 몫이라며 책임을 떠넘기는 형국이다.
14일 한국산업인력공단 등에 따르면 최근 공단이 실시한 제15회 국가전문자격 산업안전지도사(건설안전) 합격률은 22.3%에 그쳤다.
건설안전 분야 산업안전지도사 자격증 합격률은 꾸준히 낮아지고 있다. 해당 자격증은 1~3차에 걸쳐 진행되는데, 연도별 3차 합격률을 살펴보면 2021년 41.6% 수준이었으나, 2022년 33.6%, 2023년 31.5%, 2024년 26.2%로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이처럼 합격률이 점점 낮아지면서 산업안전지도사들이 경쟁 심화를 우려하며 자격증의 수요를 조절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이용우 의원(더불어민주당·인천 서구을)이 한국산업인력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이번에 실시한 지도사 3차(최종시험)의 문제별 채점 기준은 모호한 상황이다. 면접위원이 수험자의 답변을 탁월(3.5점)과 우수(2.7점) 보통(1.9점)과 단순(1.1점), 미흡(0.3점) 등으로 평가하는 추상적 평가표만 존재해서다.
지도사자격 최종시험은 정해진 산업안전보건법령 내용에 대한 지식을 구두로 묻고 답하는 면접시험으로 면접위원 3인이 하나의 평가팀을 구성해 수험자의 구술답변을 채점한다. 때문에 10점 만점에 6점 이상 득점하면 모두 합격이 가능한 데도, 자체적으로 면접위원이 점수 조절을 가능하도록 해 수요를 조절했다는 의혹이 나오는 대목이다.
실제 한 탈락자는 "1·2차 시험 결과에 대해선 과목별 세부 평가 항목이 공개되지만, 3차 시험에서는 세부 평가 항목이 공개되지 않기에 공단에 직접 물어봤다"며 "공단 측에서 공개한 채점지를 확인해보니 세 번째 문제에서 미흡(0.3점)을 준 것을 확인했다. 미흡으로 평가되려면 면접위원이 묻는 법령에 관한 질문에 대해 전혀 관련 없는 대답을 했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고 주장했다.
이어 "공단에 시험의 공정성에 대해 질의하니 '한국산업안전보건지도사협회 측에서 합격률이 높다는 민원이 계속 들어오고 있다. 자격증 수요를 조절해달라고 요청이 들어왔고, 공단이 휘둘린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다"며 "이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수년간 시간과 돈을 쏟아부은 수험생들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있다"고 성토했다.
이번 시험에 참여한 면접위원 A씨는 본인의 SNS에 "이번 지도사 면접은 보수적 채점을 하기로 했고, 인원 조정을 고려했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이번 면접위원은 대학교수와 공공기관 직원, 산업안전지도사 등 모두 24명이다.
A씨는 "이번 최종 면접은 한 부스당 7~9명이 면접을 치렀고, 각 조당 1~2명을 합격시킬 생각을 갖고 있었다"며 "점수는 면접위원 3명의 평균 점수로 결정돼 위원 각자 편단 여지에 따라 문제별 편차가 조금씩 발생할 순 있다"고 적었다.
A씨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시험 시작 전 면접관 회의를 했는데, 자격증 담당 부서 부장이 들어와서 '작년에 민원이 있어서 추가 질문은 하지 마세요'라고 했다"며 "면접관들 사이에선 '합격권에 해당하는 수험생이 여러 명 있으면 누구를 합격시켜야 할지 변별력을 위해 추가 질문이 필요하지 않냐', '합격률은 지난 회차 시험처럼 진행하라는 것이냐'라는 대화가 오갔다"고 설명했다.
그는 "담당 부장이 면접관들의 대화를 듣고 있더니 '변별력이 필요할 것 같으니 추가 질문을 해라. 다만, 합격자 수는 해당 부스 면접위원이 알아서 정해라'라고 했다"며 "앞서 오간 대화를 토대로 면접위원 모두가 조별 수험생들끼리 '상대 평가'를 하라는 식으로 이해를 했다. 공단 측에서 모두 '절대 평가'로 진행하라 했으면, 합격자 수가 두 배는 뛰었을 것이다"고 토로했다.
이어 "채점지도 인원별로 따로 주는 것이 아닌 한 장에 조별로 나열된 채점지를 줬고, 연필과 지우개를 줬기에 당연히 조별 상대 평가를 해야 할 것처럼 인지했다"며 "나중에 공단이 수험생에게 공개한 채점지가 무엇이었는지 확인했는데 면접관들이 받은 채점지와 다르게 개별로 점수가 적힌 채점지여서 의아했다"고 말했다.
또한 "공단이 수험생에게 채점지를 공개하고 합격자 수를 정하는 것은 면접위원의 몫이라고 하는 것은 면접관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책임을 돌리는 일"이라며 "면접관은 모두 그날 당일에 만났으며 서로가 누군지 몰랐고, 합격자 수에 따른 이득을 취할 수도 없다. 공단 측에서 '절대 평가'라고 진행을 하라고 확실히 말을 했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이와 관련 공단은 지난달 31일 해당 제보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공단 관계자는 "경찰에 수사 의뢰 중인 관계로 자세한 내용은 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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