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부동산 공시가격 산정 체계를 전반적으로 손봐 2027년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현행 법령에서도 개념 정리가 제대로 돼 있지 않은 점을 바로 잡고, 시세반영률도 5년 단위로 짜는 방안이 유력하다. 공시가격이 국민 대다수 실생활과 밀접한 만큼 전국 단위로 검증센터를 확대해 반발을 줄이는 작업도 병행한다.
국토교통부는 13일 주최한 '부동산 가격공시 정책개선을 위한 공청회'에서 이러한 내용을 담은 공시가격 제도 개편 방향성을 공개했다. 앞서 국토연구원이 해당 연구용역을 맡아 착수했고 결과물은 내년 9월께 나올 예정이다. 이날 발제를 맡은 박천규 국토연구원 주택·부동산연구본부장은 "중요하게 바라볼 요소는 장기적 비전과 관리 지표의 설정, 수용성과 안정성"이라며 "국민 인식에 부합하는 수용성과 제도 명확성을 다져 공시가격 제도의 안정성과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향후 개편할 체계에서는 공시가격을 '시장가치를 반영한 정책가격'으로 정의하기로 했다. 현 부동산 가격공시에 관한 법률(부동산 공시법)에서는 적정가격 정도로 표현하고 있는데 모호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현행 '시세×시세반영률' 산정방식을 그대로 가져가되 시세나 시세반영률의 개념을 명확히 하기로 했다. 시세는 공시가격을 산정하기 위한 기초적 시장가치로서의 성격을 부여하는 한편, 시세반영률은 공시가격 제도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지표 역할을 한다.
그간 개념을 섞어 쓰면서 같은 법률 안에서도 상충하는 일이 생긴 탓에 이를 바꾸는 것이다. 현 부동산 공시법 2조에서는 적정가격을 '통상적인 시장에서 정상적인 거래가 이루어지는 경우 성립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인정되는 가격'으로 본다. 그러면서도 같은 법 26조2항에서는 '공시가격이 적정가격을 반영하고 (중략) 균형성을 확보하기 위해 부동산의 시세 반영률의 목표치를 설정하고 (후략)'식으로 돼 있다. 앞에서는 적정하다고 하고, 뒤에서는 적정치 않으니 이를 인위적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해둔 것이다.
박 본부장은 "법령 해석상 모호성을 초래해서 공시 가격이 적정 가격이 돼야 하는데 시세 반영률 개념으로 인해 공시 가격이 적정 가격이 되지 못하는 논리적인 흠결을 갖는다"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공시가격이 시장가치를 반영하는 게 맞는다고 하더라도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시장 가치를 현실적으로 파악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고려했다. 공시가격 제도가 바뀔 때마다 다수 국민 사이에서 반발이 컸던 점도 반영하기로 했다. 수용성을 감안해 조정속도는 연간 1.5% 이내로 잠정했다. 안정성이나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부동산 중기 사이클인 5년 단위로 시세반영률을 정하는 방안을 이날 제시했다.
앞서 문재인 정부 시절 내놓은 현실화율 계획, 이후 윤석열 정부에서 이를 엎기 위해 추진했던 합리화 방안 모두 한계가 있다고 진단했다. 현실화율 계획은 2020년 69.0% 수준(공동주택 기준)에서 2030년 90.0%까지 단계적으로 올리겠다는 점을 법에 명문화했다. 단독주택은 90.0% 달성 시점을 2035년으로 잡았다. 10~15년에 걸친 장기 플랜을 미리 확정해두는 게 바뀌는 시장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경직적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공시가격이 시세를 웃도는 등 균형성이 악화한 사례도 있었다.
지난 정부에서 시도했던 합리화 방안의 경우 법 개정을 못해 결국 실현하지 못했다. 1년 단위로 공청회를 열고 시세반영률을 결정했던 것도 그래서다. 박 본부장은 "세금 부담이 향후 늘어날지, 완화될지 사회적 논의가 매년 시장 상황에 따라 공시가격 관련 여론에 큰 영향을 줘 제도 신뢰성이 떨어졌다"며 "이전에는 장기 목표가 경직적으로 작동했으나 최근에는 구체적 목표설정이 미흡해 정책의 예측 가능성이 낮아졌다"고 지적했다.
최근 일부 지자체에서 시범적으로 도입한 공시가격 검증지원센터도 전국 단위로 확대할 방침이다. 초고가주택 등 거래가 적어 가격산정이 어렵거나 연립·다세대 등 상대적으로 이의신청이 많은 유형에 대해서도 보완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박 본부장은 "국민 수용성을 고려하고 제도 명확성을 강화해 공시가격 제도를 보다 지속가능하고 안정적인 제도로 정립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13일 서울 서초구 한국부동산원 서울강남지사에서 '부동산 가격공시 정책 개선을 위한 공청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발제 후 이어진 토론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강춘남 태평양감정평가법인 감정평가사는 "과거 현실화율 계획이 다시 적용되는가에 대한 걱정과 기대가 공존했는데 오늘 발표에서 국민 수용성, 안정성에 중점을 두고 있어 안도했다"면서 "궁극적으로 공시가격 산정과 조세정책은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정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토지주택위원장은 "1년 만에 10억원이 올라 거래된 아파트의 경우 실거래가격 한두 건의 데이터를 토대로 과연 그것을 시장 가치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면서 "공시가격이 투기를 막고 적정한 가격을 형성해 조세형평을 도모하는 목적을 갖는데 투기수요를 좇아 결정되는 게 적정한지 보다 면밀한 고민과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수연 제주대 교수는 정책가격 같은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낼 경우 납세자 의심이 더 커질 우려가 있는 만큼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정 교수는 미국이나 영국 등에서 감정평가에 쓰는 글로벌 스탠더드 사례를 언급하며 공시가격 산정방식을 보다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그는 "내년 이후 공시가격이 올라가면 조세저항이 심해질 텐데 이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근거가 필요하다"며 "'가비지 인, 가비지 아웃'이라는 표현이 있듯 정확한 투입물을 만들어내는 공시 제도 개선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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