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들이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시기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도입 시 금융혁신에 대한 기대감은 크나, 코인런(대규모 코인 인출 사태)·자금세탁 등 부작용을 고려해 국제공조 체계 등이 보다 공고해지는 시기에 맞춘 단계적인 입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12일 한국경제학회가 공개한 '경제토론-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설문 조사에 따르면,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적절한 법제화 시기'에 대해 참여 경제학자의 40%가 '자금세탁방지(AML) 및 국제공조 체계가 보다 공고해지는 시기에 맞춰 단계적으로 입법해야 한다'고 답했다. 34.3%는 '거시경제 및 금융시장에 미칠 파급효과를 충분히 검토한 후, 약 1~2년 내 입법해야 한다'고 봤다. 22.9%는 '논의가 더 필요하면 규제샌드박스 먼저 테스트 후 입법'에 손을 들었다. '지금과 같이 신속히 입법 논의를 추진해 조기에 제도화해야 한다'고 본 경제학자는 2.9%에 그쳤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민간이 통화를 발행하는 문제이므로 국제통화를 가진 국가들이 입법화하는 과정을 본 후 점진적으로 입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윤영진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역시 "기술도입 불가피성은 인정하지만, 금융중개 시스템과 외환시장에 미칠 파급효과, 위험성에 대해 충분한 검토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며 "특히 원화 국제화에 대한 단계적 준비가 선행돼야 한다"고 짚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확산으로 인한 가장 큰 부작용·잠재 리스크는 35.6%가 '디페깅 및 코인런 발생 위험'을 꼽았다. '통화정책 통제력 및 통화주권 약화 우려'(22.2%), '자금세탁 등 불법 자금 악용 가능성'(17.8%)이 뒤를 이었다. '자금 해외유출 등의 거시건전성 위험'과 '과세 투명성 및 과표 양성화 저해'도 각각 8.9%의 표를 받았다. 김정식 교수는 "달러 스테이블 코인은 익명 혹은 가명제이고, 원화 스테이블 코인도 익명 혹은 가명제로 운영될 경우 불법적 자본유출이 늘어날 수 있다"며 "익명제는 사전, 사후적 규제가 어려우며 가명제의 경우 사후적 규제는 가능하나 사전적 자본유출 규제는 어렵다"고 강조했다.
반면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시 기대되는 가장 큰 긍정적 효과로는 59%가 '결제 시스템 혁신 및 비용 절감'을 꼽았다. '핀테크·디파이 등 금융 혁신 촉진'(28.1%)이 뒤를 이었다. '디지털 콘텐츠·플랫폼 산업 활성화'와 '부동산 등 실물자산 토큰화로 새로운 투자시장 개척'도 각각 6.3% 표를 받았다. 반면 '원화 국제화 및 아시아 금융허브 도약'을 지지한 경제학자는 아무도 없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발행 주체 자격을 어느 범위까지 허용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엔 58.1%가 '은행 및 요건 충족한 일부 비은행 금융기관'을 꼽았다. 35.5%는 '은행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답했다. 발행 주체에 대한 사전 제한이 불필요(시장 자율에 맡김)하다고 본 경제학자는 6.5%였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의 가장 중요한 동인으로는 37.1%가 '금융혁신·효율성 제고'를 꼽았다. 반면 '도입 필요성이 낮다'며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회의적으로 응답한 비율은 28.6%였다. 최동범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현시점에서는 일부 집단의 이윤 추구가 주요 동인"이라며 "블록체인 생태계가 현실화할 경우 혁신과 효율성 측면에서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부적절한 방식으로 도입될 경우 편익보다 비용이 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이 가져올 파급효과가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로는 35.3%가 '토큰증권 등 디지털 자산 산업'이 될 것이라고 봤다. '기존 인프라 및 달러 스테이블코인에 밀려 활용이 제한될 것'이라고 본 경제학자도 26.5%였다.
한편 이번 설문에는 경제토론 패널위원 92명 중 31명이 응답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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