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규리 씨가 이명박 정부 시절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한 최종 판결 이후 처음으로 심경을 밝혔다.
김 씨는 9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지난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이명박 정부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손해배상 판결 확정' 입장문을 올리며 "그동안 몇 년을 고생했던 건지. 이제는 그만 힘들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블랙리스트'의 '블' 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트라우마가 남아 있다"고 토로했다.
김 씨는 당시 겪었던 일들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집골목에 국정원 사무실이 차려졌으니 몸조심하라는 말", "며칠 동안 낯선 사람들이 집 앞을 배회했던 일", "'가만 안 있으면 죽여버리겠다'는 협박", "휴대전화 도청 피해" 등 그간 침묵했던 경험을 공개했다.
앞서 김 씨를 비롯한 개그우먼 김미화 씨 등 36명은 2017년 이명박 전 대통령과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국정원이 작성한 블랙리스트로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입었다며 국가의 책임을 물었다.
지난달 서울고등법원 민사27-2부(재판장 서승렬)는 "국가는 이 전 대통령, 원 전 원장과 공동으로 원고들에게 각 5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고, 이로써 국가 배상 책임이 최종 확정됐다.
국가정보원은 지난 7일 상고를 포기하며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국정원은 입장문에서 "이번 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문화예술인과 국민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국민이 부여한 권한을 남용한 과거를 깊이 반성하고, 신뢰받는 기관으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이어 "상고 포기를 통해 피해자들의 아픔이 조금이라도 치유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 씨는 이 소식에 대해 "상처는 남았고 그저 공허하기만 하다"며 "어쨌든 상고를 포기했다 하니 소식을 기쁘게 받아들인다"고 전했다. 또 "오랜 시간 법적 싸움을 이어온 변호사팀과 함께 고생한 선배, 동료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응원을 보낸다"고 적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이명박 정부 시절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이 주도한 '좌파 연예인 대응 TF' 활동으로, 정부 비판적 성향의 문화예술인들을 방송 및 각종 활동에서 배제한 사건이다. 국정원은 2017년 조사 결과, 82명의 예술인이 명단에 포함됐음을 확인했다. 해당 명단에는 진중권, 문성근, 권해효, 김규리, 문소리, 김미화, 김제동, 윤도현, 양희은, 안치환 등 다수의 인사들이 있었다.
이번 판결 확정과 국정원의 공식 사과로, 8년간 이어진 '문화계 블랙리스트' 소송은 마침표를 찍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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