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달 30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엔비디아의 그래픽카드(GPU) '지포스' 출시 25주년 행사에 참석해 있다. 조용준 기자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지연되고 있으나, 상업용 부동산 시장은 기지개를 켜고 있다. 통상 금리가 내려가야 대출 부담이 줄어 투자심리가 살아나는데 인하도 되기 전에 시장이 먼저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 9월 서울의 상업·업무용 부동산 거래액은 한 달 새 두 배로 뛰었고 전국 단위 거래액도 2개 분기 연속 증가했다. 데이터센터 등 인공지능(AI) 인프라형 자산으로 'AI 머니'가 흘러들면서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 서서히 자금이 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8일 상업용 부동산데이터기업 알스퀘어 애널리틱스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9월 서울 상업·업무용 부동산 거래 규모는 2조1519억원, 거래 건수는 193건으로 집계됐다. 전월(1조211억 원·130건) 대비 거래액은 2.1배 급증했다. 거래 건수는 48% 늘었다.
서울뿐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회복세가 감지되고 있다. 상업용부동산전문기업 부동산플래닛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전국 상업·업무용 빌딩 거래액은 11조9809억원으로 전 분기 대비 14.9% 늘었다. 거래 건수는 3456건으로 2분기보다 3.5% 줄어 대형 거래 중심 회복세가 나타나고 있다.
'AI 머니'에서 막대한 자금이 들어오고 있다. 2020년 이전만 해도 1년에 한두 건 정도 거래가 이뤄졌으나, 수도권을 중심으로 대형 거래가 성사되고 있다. 2018년 신세계I&C가 보유하던 '드림마크원 구로 IDC'는 490억원에 드림마크원으로 넘어갔다. 2020년에는 JB자산운용이 보유한 '분당 Hostway IDC'가 코람코자산운용으로 매각됐다. 지난해 8월에는 매쿼리한국인프라가 참여한 '하남 데이터센터'(7340억원)가 팔렸다. 올해 7월에는 'SK AX 판교 IDC'(5068억원)가 SK브로드밴드로, '세종텔레콤 분당 IDC'(315억원)가 파인앤파트너스자산운용으로 각각 손바뀜했다.
최근 알스퀘어 리서치센터가 발표한 '2025 데이터센터 리포트'에 따르면 국내 데이터센터 공급은 2010년 이후 연평균 20.3%씩 늘고 있다. 자산운용사와 글로벌 투자펀드는 하남·판교 등 수도권 주요 지역에서 수천억원대 데이터센터를 사고팔고 있다. 기존 오피스·리테일 중심에서 벗어나 전력·냉각·네트워크를 결합한 인공지능 데이터센터(AIDC)와 엣지형 센터가 부동산 시장 신흥 자산군으로 떠오른 것이다.
싱가포르 테마섹 홀딩스의 경우 STT 글로벌데이터센터(GDC)를 통해 서울에서 'STT Seoul 1(데이터센터)' 운영을 추진 중이다. 영국 액티스도 '디토 양평센터'와 '에포크 안양'을 개발하고 있다. 미국 스톤피크 인프라스트럭처 파트너스는 '디지털엣지(Digital Edge)'로 SEL1·SEL2·PUS1을, 캐나다 브룩필드자산운용은 DCI와 손잡고 SEL01·SEL02(2028년 완공 예정)를 운영한다. 이 밖에 홍콩 거캐피탈(Gaw Capital)은 구로·인천 IDC, 미국 블루아울캐피털은 부평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에 참여 중이다.
글로벌 AI 기업들도 한국을 속속 찾으면서 이 같은 자금의 흐름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지난달 말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서밋(기업인 회의) 참석차 방한해 약 26만개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한국 정부와 삼성전자·SK·현대차그룹에 공급하기로 했다.
앞서 샘 올트먼 오픈AI 대표도 한국을 찾아, 삼성전자와 SK그룹과 AI 데이터센터·반도체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LOI)를 맺었다. 이 자리에는 이재명 대통령도 동석해 "한국을 세계적 AI 허브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움직임이 기술 협력의 범위를 넘어 데이터센터를 비롯한 산업형 부동산 시장으로 자본의 흐름을 돌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최규정 알스퀘어 리서치센터 선임은 "AI 학습과 운영에 필요한 데이터양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이를 저장·관리할 서버와 데이터센터 수요도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며 "이 같은 수요 확대는 자본유입으로 직결돼,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실사용자부터 오퍼레이터, 자산운용사, 기관투자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장 참여자들이 잇따라 진입하면서 활황세가 이어질 전망"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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