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승계를 위해 장남이 운영하는 회사를 부당 지원한 혐의로 삼표그룹 정도원(78) 회장이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총수 일가의 불법 승계 구조에 대해 예외 없이 처벌하겠다"고 밝혔다.
4일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검사 나희석)는 정 회장을 공정거래법 위반 및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또 지난해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이미 재판에 넘겨진 삼표산업 홍성원(69) 전 대표이사에 대해서도 배임 혐의를 추가로 적용했다.
검찰에 따르면 정 회장은 홍 전 대표와 공모해 장남 정대현 삼표그룹 수석부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에스피네이처(SP Nature)에 약 74억원을 부당 지원한 혐의를 받고 있다.
에스피네이처는 레미콘 제조에 필요한 '분체'를 공급하는 업체로, 삼표산업은 2016년 1월부터 2019년 12월까지 이 회사에서만 비계열사보다 4% 비싼 가격으로 원재료를 구매했다.
이로 인해 에스피네이처는 경쟁 없이 급성장하며 매출과 영업이익이 크게 늘었고, 이를 통해 유상증자 출자대금 등 경영권 승계 재원을 확보한 것으로 검찰은 판단했다.
검찰 관계자는 "정 회장이 수익성이 높은 '캐시카우' 사업을 장남이 지배하도록 하고, 계열사를 통해 고가로 원재료를 구매하는 방식으로 이익을 이전했다"고 밝혔다.
삼표산업 내부에서는 비합리적인 거래로 손실이 커지자 임직원 항의가 이어졌지만, 정 회장과 홍 전 대표는 지원을 중단하지 않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앞서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8월 삼표산업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이후 압수수색과 관계자 조사를 거쳐 부당지원이 단순 내부거래를 넘어 승계 구도 형성에 직접적 역할을 했다고 보고 기소로 결론냈다.
검찰은 "기업 총수가 경영권을 탈법적으로 세습하기 위해 계열사 간 일감을 몰아주는 관행을 엄정히 단속하겠다"며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영향력과 무관하게 공정 경쟁을 저해한 자는 반드시 처벌받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장남 정 부회장은 이번 기소 대상에서 제외됐다. 검찰은 공정거래법상 지원 주체에 대한 처벌 규정만 존재하고, 지원 대상은 별도의 처벌 조항이 없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또 배임 혐의의 경우, 수익자가 범행 전 과정에 직접 가담한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에만 공범으로 인정된다는 법리적 한계를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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