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코스피 5000’ 발목 잡는 허술한 공시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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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액주주들은 상장사의 '전환사채(CB)'를 두려워한다. CB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채권자가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주식 전환 청구가 들어온다는 것은 곧 기존 주식 가치를 희석시키는 요인이다.


이 때문에 한국거래소는 전체 주식 수의 1% 이상이 전환 청구되면 상장사가 '전환청구권행사' 공시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투자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통상 전환청구권행사 공시가 나간 뒤 2주에서 한 달이 지난 후 신주가 상장되기 때문에 기존 투자자들은 미리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된다.

문제는 이 공시가 '수시공시' 항목이 아닌 '시장신고'에 속한다는 점이다. 수시공시는 만약 기업이 누락할 경우 법적 제재나 불성실공시법인 지정 등의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시장신고는 이런 페널티가 없다. 거래소가 단지 관리 목적으로 만든 규정이기 때문이다.


불이익이 없다 보니 이를 악용하는 상장사가 종종 등장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진양제약은 2021년 160억원 규모 CB를 발행했다. 이후 지난 7월까지 66억원 규모, 전체 주식의 10%가 넘는 물량이 11번에 걸쳐 주식으로 전환됐지만, 진양제약은 단 한 번도 전환청구권행사 공시를 하지 않았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기존 주식 가치가 희석될 수 있다는 사실을 신주가 상장되기 직전 거래소가 내보내는 '추가상장' 공시로 촉박하게 알 수 있었던 셈이다.


기업이 전환청구권 공시를 성실히 이행하는 것은 단순히 규정을 지키는 차원을 넘어, 투자자 신뢰를 유지하기 위한 사회적 책임이다. 공시하지 않아도 법적으로 문제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를 외면하는 행위는 법망의 빈틈을 이용한 '도덕적해이'이며, 이는 장기적으로 기업 평판 리스크로 되돌아온다. 기업이 단기적으로 공시 부담을 피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신뢰를 잃은 시장에서 자본조달 비용은 결국 더 커진다.

금융당국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시장의 신뢰를 지탱하는 핵심은 정보의 적시성인데, 관리 목적이라는 이유로 '전환청구권행사'를 단순 신고사항으로 분류해 둔 것은 명백한 제도적 오류다. 전환 청구가 접수된 즉시 공시가 이뤄져야 시장은 신주 상장이라는 공급 충격을 사전에 흡수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갖는다. 지금처럼 신주상장 공시 때까지 투자자들이 그 사실을 알 수 없다면, 이는 곧 '정보의 비대칭을 방치하는 공시제도'나 다름없다.


금융당국과 거래소는 전환청구권행사 공시를 단순한 신고 항목이 아니라 정식 수시공시 항목으로 격상해야 한다. 또한 공시 지연 시 불성실공시 제재를 부과하는 등의 실질적 제재 수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정보 비대칭이 줄어들수록 시장의 투명성은 높아지고, 이는 곧 한국 자본시장의 신뢰 경쟁력으로 이어질 것이다. '코스피 5000'이라는 목표를 두고 해결해야 할 선행 과제다.





장효원 기자 specialjh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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