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얘기로만 생각했던 '코스피 5000'이라는 숫자가 증권사들의 2026년도 연간 전망 목표치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역사적인 증시 활황에 이재명 정부가 공언했던 '오천피' 달성이 더는 단순한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실현 가능한 목표치라는 인식이 확산하는 분위기다.
3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는 전날 1.7% 오른 4081에 장을 마감하며 또 한번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올해 3분기 11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내며 사상 최대 분기 실적을 기록한 SK하이닉스 는 시가총액이 400조원을 넘어섰으며, 10만원대에 안착한 삼성전자 는 시총 600조원 돌파를 눈앞에 뒀다.
이 같은 기록적인 랠리에 증권가에선 한국 증시가 구조적 전환기에 들어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KB증권은 "이번 강세장은 단순한 경기 반등이 아니라 '3저 호황(저달러·저유가·저금리)' 이후 40년 만에 재현되는 장기 상승 국면의 시작일 가능성이 높다"며 "이번 랠리는 기업이익의 개선뿐 아니라 글로벌 자산 배분 변화와 글로벌 유동성 이동이 동반되는 점이 특징"이라고 짚었다.
한국 증시는 과거 두 차례의 대세 상승기(1986~1989년·2003~2007년)를 경험했는데, 매우 드물다는 '저달러·저유가' 조합이 40여년 만에 재현되면서 1980년대 후반 '3저 호황' 당시와 유사한 주가 패턴 및 매크로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게 KB증권의 설명이다. 2026년 코스피 목표 지수는 5000으로 제시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JP모건 역시 코스피 12개월 목표치를 KB증권과 동일한 5000으로 제시하면서 강세장일 경우 6000까지도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JP모건은 "한국 증시의 움직임이 빠르고 주가가 과도하게 오른 것처럼 보일 수 있어도, 단기 조정을 틈탄 매수를 권고한다"며 메모리 반도체, 금융, 지주사, 방위산업, 조선, 전력 설비 선호 업종으로 꼽았다.
DS투자증권은 2026년 코스피 밴드를 4200~4500으로 설정했다. 이 증권사는 "현재 코스피 수준이 물가와 환율을 모두 고려할 때 2021년 고점을 하회하고 있으며 광의통화(M2) 유동성 증가,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 사이클, 조선 슈퍼 사이클 등 다양한 요인들도 증시에 우호적"이라고 진단했다. 이 밖에 한국투자증권은 내년 코스피 목표치를 4600으로 잡았고, 흥국증권은 내년 코스피 등락 범위를 3500~4600, 키움증권은 3500∼4500으로 제시했다.
다만 최근 코스피 랠리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소수의 대형주의 동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점은 우려 사항으로 꼽힌다. 실제로 올해 들어 전날까지 코스피가 70% 치솟는 동안 코스닥은 절반 수준인 33% 상승에 그쳤다. 같은 기간 코스피 내에서도 대형주는 76% 넘게 뛴 반면, 소형주는 19% 상승에 머물렀다. 특히 올해 코스피·코스닥 합산 시총이 1459조원 증가할 때 반도체 시총이 552조원 늘어 37.8%를 차지했다.
강송철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코스피의 ADR(상승 종목 수/하락 종목 수 비율)은 지난 7~8월까지는 상승했지만, 9월 이후 시총 상위권의 대형 반도체 종목 위주로 지수가 뛰면서 다시 급락했다"며 "지수는 상승하는데 ADR은 1배 미만으로 하락하는 상황이 지속될 경우 종목 쏠림 현상의 부담이 점점 가중될 수 있다. 안정적인 상승을 위해선 ADR 반등이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은택 KB증권 연구원은 "과거 닷컴버블이 붕괴하던 때에도 밸류에이션이 높은 나스닥100은 다른 지수들이 떨어질 때 거의 2배나 더 상승한 후 정점이 나왔다.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투자자들은 미래성장성과 현재 실적 가시성이 높은 종목으로 자금을 더욱 집중시켰다"며 "기존 주도주의 집중화 현상은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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