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출입은행의 해외 화석연료 관련 금융지원 비율이 청정에너지 분야보다 여전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 유수의 은행들이 수익성을 이유로 화석연료 금융지원을 중단하고 있는 만큼 수출입은행도 포트폴리오 조정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수출입은행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2015년부터 올해 9월30일까지 승인된 해외 화석연료 사업 건수는 41건이다. 같은 기간 청정에너지 사업은 12건에 그쳤다. 계약 규모는 격차가 더욱 컸다. 대출과 보증을 모두 포함한 실제 계약금액 기준 화석연료 사업 지원 규모는 약 205억달러(29조4400억원)에 이르렀다. 반면 청정에너지 사업은 10억7200만달러(약 1조5300억원)로, 화석연료의 약 5% 수준에 머물렀다.
수출입은행은 공적 수출신용기관으로, 시중은행이 다루기 어려운 장기·고위험 프로젝트 수출을 정책적으로 지원한다.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 시 해당 프로젝트에 대해 직접 대출과 신용 제공뿐 아니라 위험(리스크) 보증과 보험 서비스도 함께 제공한다.
한국이 2021년 해외 석탄발전소 건설 금융지원 중단을 선언한 이후에도 수출입은행의 화석연료 금융지원 비중은 높았다. 2022년부터 올해 9월까지 화석연료 금융지원은 13건, 청정에너지는 8건이었다. 규모는 각각 약 94억달러와 8억달러로, 큰 차이를 보였다.
이 기간에 화석연료 인프라 프로젝트에서 가장 많이 승인된 사업은 발전소 건설 사업이다. 미국 괌 가스복합화력발전사업을 시작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열병합발전사업, 카타르 담수발전사업, 사우디아라비아 가스복합화력발전사업이 이에 해당하며 계약금액 규모는 약 30억달러에 달했다. 청정에너지 분야에서는 태양광발전사업이 7건(대만·칠레·멕시코·오만·UAE·사우디아라비아)으로 가장 많았다.
선박금융(해운사가 자기자금으로 선박을 건조하기 어려운 경우 금융기관이 자금을 지원하는 것) 분야에서도 화석연료 사업 비중이 높았다. 수출입은행은 지난 10년간 선박금융 부문에서 화석연료 운반선 건조 지원 314건, 총 14조5500억원을 승인했다. 이 중 액화천연가스(LNG) 관련 사업은 120건이었으며 규모는 8조9884억원으로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반면 상대적으로 친환경으로 분류되는 암모니아 운반선 관련 지원은 4건(1575억원)에 그쳤다.
기후환경단체 기후솔루션이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 런던(UCL) 에너지연구소의 연구 결과를 인용해 작성한 '한국의 해운 좌초자산 리스크 노출 분석'에 따르면 수출입은행은 선박 포트폴리오의 약 65%가 석유·가스 운반선으로 구성돼 있으며, 화석연료 운반선이 포트폴리오를 지배하는 극소수 금융기관 중 하나로 꼽힌다. UCL 연구팀은 "기후위기 대응에 따른 탈탄소 전환이 빨라지면 화석연료 운반선의 수익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한국의 경우 이러한 리스크가 현실화할 경우 국가와 민간 금융 부문 모두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같은 수출입은행의 과도한 화석연료 금융지원 집중에 대해 국정감사에서도 지적이 제기됐다. 이소영 의원은 지난 27일 열린 국회 기재위 국정감사에서 "해외 주요 금융기관들이 화석연료 투자를 중단하고 있는데 이는 경제적 합리성 문제"라며 "그런데도 수출입은행이 투자의향서를 발급하는 등 검토하고 있는 신규 화석연료 사업이 45건"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안종혁 수출입은행장 직무대행은 "수은이 사실 수익성을 위주로 의사결정을 하지는 않는다"며 "우리 산업이 제조업 중심 구조를 가지고 있어 재생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분명하지만, 그 전환 속도를 얼마나 빠르게 가져갈 수 있을지 부분도 중요한 고려 요소로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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