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호정 서울시의회 의장은 서울시의회 개원 68년 역사상 첫 여성 의장이다. '최초 여성 서울시의회 의장' 타이틀에 대해 그는 의장실에 걸려 있는 역대 의장들의 사진 액자들을 둘러보며 "기쁘기도 하지만 책임감도 느낀다"고 말했다.
최 의장은 최근 서울시가 남녀 시민 모두 가사·돌봄노동을 경력으로 인정케 하는 조례안을 대표발의했다. 양성평등기본법에 따르면 국가 및 지자체는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정당하게 평가해 법령·제도·시책에 반영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는데, 조례안은 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다. 조례안은 올해 검토를 거쳐 처리 여부가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최 의장은 조례안을 설명하면서 주부로 살다가 시의원으로 처음 출마한 당시 경험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최 의장은 "결혼 후 19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가사노동을 해왔지만, 의원이 되기 위해 경력을 쓰려고 하는데 하나도 없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의장이 되고 올해 3월 '가사노동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토론회를 열었는데 경제적 보상도 쉽지 않았다"며 "보상까지는 못하더라도 사회에 나올 때 경력으로라도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서울시장이 가사노동에 대한 경력을 인정해 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조례안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최 의장은 "내 주변 사람들이 나 때문에 행복했으면 한다"는 신조로 삶을 살고 있다. 3선 시의원, 시의회 의장이 된 최 의장의 '주변 사람'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는 "개인적 목표가 결국 정치인으로서의 목표 같다"며 "정치인으로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들이 나를 통해 (걱정을) 풀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24일 서울시의회 의장실에서 최 의장을 만났다.
-정치 입문 계기는.
▲큰 뜻을 품고 정치에 입문한 것은 아니다. 결혼 후 아이들만 키우다가 녹색 어머니 봉사를 했다. 당시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가 국립학교에서 공립학교로 전환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대한민국 교육의 테스트베드가 될 수 있는 국립학교가 전환돼선 안 된다는 생각으로 백방으로 나섰다. 당시 지역 국회의원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를 잘 해결해주셨다. 이후 의원님과 함께 지역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지역 정치인을 제안받게 됐다.
-정치활동 중 어려움은 없었는지.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2018년도에 낙선을 한 번 했다. 최선을 다해서 의정활동을 해왔지만, 당시 든 생각은 '나 혼자 열심히 해서 되는 일이 아니구나'였다. 잠시 쉬어가는 시간은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동안 바빠서 못 만났던 주민들을 더 자주 만날 수 있었다. 당시 아르바이트를 하던 카페에 찾아온 주민들과 많은 얘기들을 나눴다.
-'최초의 여성 서울시의회 의장' 타이틀의 의미는.
▲서울시의회가 1956년 시작됐는데 한 번도 여성 의장이 없었다. (역대 의장 사진들을 가리키며) 여기까지 다 남성인데 처음으로 여성 의장 사진이 걸리게 되는 것이 뜻깊다. 그렇지만 '잘해야지' 같은 막중한 책임감도 느낀다.
-의정활동에 있어서 방점을 두는 포인트는.
▲현장이 필요하다고 하면 가려고 하는 편이다. 최근엔 조경사업 관계자들의 문제 제기를 듣고 현장을 방문해 직접 확인한 후 해결책을 마련한 경험이 있다. 조경업체에서 공사가 끝나면 2년의 애프터서비스(AS) 기간이 있는데, 그동안 식재 관리는 구청에서 한다. 업체에서 AS를 하러 가도 손상 원인을 파악하기 어려운 데다 관리를 조금만 잘하면 다시 나무를 심을 일이 없을 텐데 답답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현장에서 구청 등 여러 관계자의 얘기를 들어보니 조경업체의 말이 맞았다. 내년에는 식재 공사를 하신 분들이 2년 동안 관리를 할 수 있도록 조경 수목 유지관리 개선 예산 1억5000만원을 마련했다.
-최근 가사·돌봄노동에 대한 경력을 서울시가 인정하도록 하는 조례안을 발의했다.
▲'서울시 경력보유시민의 가사·돌봄노동 인정 및 권익증진에 관한 조례안'을 발의했다. 결혼하고 19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가사노동을 했는데, 의원에 나가기 위해 경력을 쓰려고 하니 경력이 하나도 없었다. 처음엔 뭐 하고 살았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지난 3월엔 가사노동도 값지다는 것을 사회에 알리고 싶어 '가사노동의 사회적 가치는 얼마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도 열었다. 여성이건 남성이건 이분들이 사회에 나올 때 경력으로 가사노동을 인정해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서울시장이 경력을 인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으로 조례를 만들었다.
-조례안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길 바라는지.
▲영향을 꼭 미쳤으면 좋겠다. 우리 아들 가정에도 자녀가 생기게 됐는데 현재 며느리가 육아휴직을 하고 있다. 가사·돌봄노동은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가사·돌봄노동이 사회경력으로 인정돼 가치가 재평가되길 기대한다. 어떤 노동이든 경시될 만한 노동은 없다.
-사회적 약자의 안전망 구축을 위한 지방의회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는지.
▲중앙정치보다는 지방의회가 그런 일들과 더 가까이 있다고 생각한다. 시민 곁에서 더 가까이서 듣고 더 구체적인 지원을 할 수 있는 게 지방의회이기 때문이다. 중앙정치가 큰 방향을 잡는다고 하면 이를 실천하는 사업을 하는 게 지방자치이기 때문에 좀 더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 제19대 후반기 회장으로 선출돼 지방의회법 제정을 강조하고 있다.
▲지방자치가 30주년을 맞았다. 예전에 비해 시민들도 지방자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인정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정권, 조직권, 감사권 등 지방의회에 없는 권한이 있어 한계에 부딪힐 때도 있다. 가령 인력이 필요해도 지자체나 행안부의 허락이 필요하다거나, 자체 예산을 편성하기 어려운 점 등이다. 이 권한들을 바탕으로 완전한 지방자치를 완성하기 위해서 지방의회법이 필요하다. 현재 국회의원 네 분께서 법안을 발의해 놓은 상태이고 서울시의회에서도 조문을 만들어 시도의장협의회를 통해 국회 발의를 요청해놓은 상태다. 이른 시일 내 법안이 통과됐으면 한다.
-민생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서울시나 광역의회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다만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한다. 예를 들어 대규모 마트의 주말 휴업일 규제를 풀기 위해 서울시의회에서 가장 처음 조례를 바꿨다. 또 폭염으로 배춧값이 너무 많이 오를 것을 걱정해 농수산식품공사에 수급이 원활하게 될 수 있도록 해달라든지 등 작은 일들을 해나가고 있다. 다만 광역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지는 않아 답답하긴 하다. 경기가 잘 돌아갔으면 좋겠다.
-정치인을 꿈꾸는 후배 여성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도전해보라는 것이다. 바꿀 수 있는 것이 참 많다. 이전부터 생각해왔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조례를 만드는 등 그런 일들을 할 수 있다. 세상을 바꾸려면 도전을 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고 싶다. 얘기하다 보니 나부터 두려움을 깨야겠다는 생각도 또 든다(웃음).
-앞으로의 목표가 궁금하다.
▲인간 최호정으로서는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 되자'는 것이 목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거창한 것보다는 내 주위 사람들이 나와 얘기하면서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 정치를 하면서 그 마음이 더 커지고 있다. 주민들이 힘들 때 오면 해결하기 어려울지라도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그분들의 마음이 좀 더 편했으면 한다. 정치인이 된 후에 만나는 사람들도 더 많아지고 고칠 수 있는 것도 더 많아졌다. 정치인으로서 만난 많은 사람이 나를 통해 (걱정을) 풀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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