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통상·안보 분야를 모두 포함하는 이른바 '조인트 팩트시트' 발표 가능성을 열어두고 남은 협상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협상 진행 상황에 대해서는 원자력 협정·국방비 증액 등 안보 분야는 1차 정상회담에서 합의를 마쳤으나, 관세 협상을 마무리 짓지 못해 한미 공통의 포괄 문서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26일 위 실장은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APEC을 계기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관세 협상이 타결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관세분야 협상은) 집중 조정해서 (이견이) 좁혀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주요 쟁점이 남아있는 상황"이라며 "이 대통령이 '경제적 합리성'과 '국익 중심의 협상'이라는 강한 훈령을 주고 계시다. 훈령에 따라 지금 마지막 조정을 위해 협상팀이 분투하고 있지만,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타결될 수 있을지는 저도 확신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두 번째 한미 정상회담은 29일 열린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톱다운' 방식으로 극적 타결 가능성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위 실장은 "정상회담에서는 대개 사전 준비를 해서 정상회담이 일종의 화룡점정의 장이 되기도 한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특이한 협상가 기질을 가지고 있고, 우리 대통령도 협상가 기질을 가졌지만 사전 조정을 해서 마무리 짓는 것을 선호한다. 그 자리(정상회담)가 화룡점정이 되기를 기대하는 데 두고 보시자"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한미 정상회담에서 '조인트 팩트시트' 형태로 통상·안보 패키지 딜 발표 가능성을 포함해 안보 패키지 분야 딜 발표, 미발표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협상에 임하고 있다고 했다. 위 실장은 "팩트시트는 한쪽이 일방적으로 하는 형태도 있고, 합의나 마찬가지인 공통의 문서인 조인트 팩트시트도 있다"면서 "문서 작업을 해왔고, 안보 분야는 대체로 그런 문구들이 공통으로 양해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위 실장은 "관세 분야에서 공통의 문서로 이르지 못했는데, 그게 나오면 다 되는 것"이라며 "문서 작업도 추진한다고 말씀드릴 수 있는데, 관세는 문서 작업이 완료될지 모르겠다. 문서작업이 돼 있는 안보 분야를 공표할지는 두고 봐야 한다"고 했다.
안보 분야 핵심 의제 중 하나였던 우라늄 농축·핵연료 재처리 등 원자력 협정 개정 문제는 접점을 찾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위 실장은 "1차 한미 정상회담 때 안보 패키지는 대체로 '양승(승낙)'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그는 우라늄 농축 권한을 확대하는 내용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받고 있다"면서 "우리는 두 권한을 모두 가지고 있는 일본을 모델로 한다. 미국에 일본과 유사하게, 동일하게 허용해 달라고 하고 있다"고 했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문제에 대해서도 염려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위 실장은 한미 간 방위비 문제와 관련한 조율이 한일 간 조율보다 앞서 있고, 국방비를 늘리고 더 많은 역할을 하는 부분에 한국이 전향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만큼 새로운 부담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위 실장은 미·일 정상회담에서 방위비 관련 정책이 결정되면 한국에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럴 수도 있는데 크게 염려하진 않는다"면서 "한미 간에 그 문제를 이미 다뤘고 한미 간 논의가 미·일 간 논의보다 앞서 있다"고 했다. 이어 그는 "이 대통령도 한반도 방위에서 자주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지침 아래 방위비와 국방비 증액을 지시했다"며 "그 카드를 가지고 미국과 협상했고, 그러면서 원자력 협정 개정 문제도 합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위 실장은 내달 1일 예정된 한중 정상회담에 대해서는 한반도 비핵화 협력과 경제 협력을 꾀할 공간을 찾는 첫 번째 만남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면서 11년 만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국빈방문을 앞두고 국내에서 벌어지는 반중·혐중 시위는 자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 실장은 한중 정상회담의 목표와 관련해 "이번에 만남에서 인간적인 관계를 소통 관계를 잘 구축하는 게 첫째 이슈라고 할 수 있다"면서 "두 번째로는 미·중 대립이 굉장히 심한 시대를 살고 있는 가운데 한반도 비핵화, 평화, 안정을 위한 중국의 협력을 견인하고 경제 등 실질적인 협력 영역에서 운신할 공간들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반중, 혐중 시위 같은 게 있다는 것은 국빈 방한의 정신에 맞지 않고 손님을 대접하는 입장에서도 무례한 일이니 자제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다카이치 시나에 신임 일본 총리와 한일 정상회담은 30일 열릴 것으로 예상했다. 또 최근 1박 2일로 일본을 방문한 위 실장은 다카이치 총리에 대해 보수성은 있지만 우익 성향의 인사라고 보지 않는 관점이 있고, 한일 관계에도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일본에 가서 새 정부에 관련되는 요인들과 만나서 협의를 했는데, 보수성이 있는 분이지만 우익 성향의 인사라고 보지는 않는 관점들이 많았다"면서 "한일 관계에 대해서는 또 각별한 관심과 중요도를 인식하고 계신다고 한다고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두 정상이 APEC 계기에 만나서 첫 관계를 잘 수립하면 한일 간의 파트너십을 발전시켜나가는 데 지장이 없을 것으로 기대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 과정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날 가능성에 대해서는 정보가 제한적이라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에어포스원 기내에서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미국과 대화를 전제로 한 북한의 핵보유국 인정 요구에 대해 "(북한이) 일종의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라고 생각한다"면서 김 위원장과 만날 가능성에 대해 "그렇게 하고 싶다. 그(김 위원장)는 우리가 그쪽으로 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답변했다.
위 실장은 트럼프의 이런 발언에 대해 "(만남이) 이뤄지길 바라고 이뤄지면 성원하려 한다"면서도 "미국 측과 소통하고 있지만 저희가 특별히 알고 있는 것은 없다"고 했다. 일각에서 조셉 윤 주한 미국대사 대리가 이임한 것을 두고 북·미 회담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는 것에 대해 "북·미 회담과 관련지어 볼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부산에서 열리는 미·중 정상회담에 대해서는 제3국(한국)의 다자 무대에서 이뤄지는 특이한 구조라며 긴 시간을 할애해서 협의할 것 같진 않다고 내다봤다. 위 실장은 "APEC이라고 하는 장에서 열리기 때문에 베이징·워싱턴에서 열릴 경우보다는 조금 짧은 회담이 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어디까지 갈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일부 무역 현안 이슈에서 진전을 기대할 수는 있다고 본다"고 했다.
이번 APEC 정상회의에서 '경주 선언' 채택을 목표로 문안을 조율하고 있다고도 밝혔다. 2018년 파푸아뉴기니 회의에서 미·중 갈등으로 공동선언이 무산됐던 전례가 있었던 만큼, 경주 선언이 나오도록 미·중 사이에 조정 역할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의장국인 한국은 이번 선언에 '우리가 만들어가는 지속가능한 내일-연결·혁신·번영'이라는 주제와 부주제를 반영해 공급망 안정, 디지털·인공지능(AI) 협력, 인구구조 변화 대응 등 공동 의제를 압축해 담을 것으로 보인다. 정상회의 공동선언은 각료·고위관리 협의에서 문안을 결정한 뒤 정상들이 채택하는 절차를 밟는다.
위 실장은 "APEC 계기로 열리는 미·중 정상회담이 잘 되면 이후에 열리는 APEC 여러 회의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면서 "선순환이 될 수 있다. APEC에서 선언문도 만들려고 하는데 미·중이 잘 되면 용이하지 않겠냐는 기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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