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농어촌 지역의 의료 현장이 붕괴 직전이다. 공중보건의사(공보의) 지원자가 해마다 줄면서 보건지소 문이 닫히고, 응급실조차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24일 병무청에 따르면, 최근 5년 새 의대생이 공보의 대신 현역병으로 입대한 비율이 급격히 늘었다. 2020년 150명에 불과하던 현역 입대자는 2023년 267명, 지난해에는 1,363명으로 치솟았다.
전문 인력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완도군 신지보건지소. 이준경 기자
공보의 복무 기간이 37개월로, 일반 병사(18개월)의 두 배가 넘는 점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다른 대체복무 요원과 달리 군사훈련 기간이 복무 기간에 포함되지 않는 것도 불만 요인이다.
이 같은 제도적 불균형 속에 신규 공보의 수는 빠르게 감소했다. 한때 1,600명을 웃돌던 신규 편입자는 2023년 1,107명까지 줄었다. 그 여파로 지난해 8월 기준 전국 보건소 7곳, 보건지소 377곳에는 공보의가 단 한 명도 배치되지 못했다. 의료 인력이 끊기면서 전국 19곳 보건지소가 결국 진료를 중단했다.
가장 큰 피해는 농어촌 주민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혈압·당뇨 관리부터 예방접종, 감염병 대응 등 기본 진료조차 제때 이뤄지지 않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특히 완도·진도·신안 등 섬 지역은 응급환자 발생 시 헬기 이송에 의존하지만, 기상악화로 '골든타임'을 놓치는 경우가 잦다.
완도 대성병원 전이양 원장은 "응급실 인력을 구하기가 너무 어렵다. 공보의가 복직으로 떠나면 그 자리를 메우지 못해 곧바로 진료 공백이 생긴다"며 "진료 환경이 점점 악화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응급의료 인력난을 해결하려면 국가 차원의 인건비 지원이 절실하다"며 "야간 당직조차 법적 제약이 많고, 인건비 부담으로 병원 전체가 수억 원대 적자를 감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현실을 두고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중재에 나섰다. 지난 23일 세종시 보건복지부 청사에서는 박 의원 주선으로 완도·진도 등 의료취약지 병원 관계자들과 복지부 간담회가 열렸다.
완도 대성병원, 진도 한국병원, 신안 대우병원, 의성 영남제일병원 등 전국의료취약지병원협회 소속 병원 대표 5명이 참석해 응급실 운영난, 지역 거점의료기관 지원, 돌봄 통합사업 개선 방안 등을 논의했다.
박 의원은 "그동안 국회와 복지부 간 논의를 통해 의료취약지 문제 해결을 촉구해왔다"며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된 구체적인 정책 대안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지역 의료의 최전선에서 공백이 커지고 있다. 정부의 제도 개선과 실질적 지원 없이는, 농어촌의 '의사 없는 보건지소' 현실은 더는 예외가 아닌 일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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