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
■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 출연 : 이현우 기자
일본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총리가 취임하면서 아베노믹스를 계승한 '사나에노믹스'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여자 아베'로 불릴 만큼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정책 노선을 따르는 다카이치 총리의 경제 정책은 일본 증시에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니케이지수는 사상 최고치인 4만9000선을 돌파하는 등 투자자들의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다만 지난 아베노믹스 정책에 따른 엔저현상에 악영향을 받은 한국경제는 수출경쟁력 약화가 불가피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다카이치 총리가 추진하는 사나에노믹스는 아베노믹스의 핵심인 '세 개의 화살' 정책을 기반으로 한다. 세 개의 화살이란 무제한 양적 완화, 재정 확대 정책, 그리고 경제 구조 개혁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는 금리를 제로 금리 상태로 낮춰 장기간 유지하면서 시중에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하고, 시중은행들이 기업과 개인에 대한 대출을 늘려 부동산, 주식, 사업 등에 투자하도록 유도함으로써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전략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물가 급등 부작용에 대해서는 정부가 재정을 대폭 확대해 근로자들의 임금을 보전하고 복지 혜택을 제공함으로써 물가 상승률보다 임금 상승률을 높여 인플레이션 부담을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경기가 활성화되면 각종 규제 철폐, 공기업 구조조정, 불합리한 관행 제거 등의 구조 개혁을 추진한다는 것이 정책의 골자다.
다카이치 총리는 아베노믹스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존보다 더 많은 적자 국채를 발행해 보다 대담한 재정 정책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국가 채무를 대폭 늘려서라도 적극적인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소식에 일본 주식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니케이 지수는 사상 최고치인 4만9000선을 넘어섰고, 조만간 5만선 돌파도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시중에 대규모 유동성을 공급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증시와 자산시장으로 자금이 몰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 학계에서는 사나에노믹스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현재의 경제 상황이 아베노믹스가 시행되던 시기와 크게 다르다는 점이다. 아베노믹스가 추진됐던 2012년 당시 일본 경제의 주요 과제는 디플레이션 해소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기가 회복세로 전환되던 시기였으며, 국제유가도 상당히 낮은 수준이었다. 일본만 '잃어버린 30년'이라 불리는 장기 불황에서 벗어나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던 상황에서 아베노믹스는 나름의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반면 현재는 대외 환경이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어 있다. 중동과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지속되면서 국제 유가와 곡물 가격이 크게 상승했고, 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이 극심한 상태다. 게다가 일본은 최근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5500억달러, 한화로 약 788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을 미국에 투자하기로 약속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제한 양적 완화를 시행할 경우 엔화는 대폭락할 수밖에 없고, 수출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은 강화되겠지만 원자재를 해외에서 수입해야 하는 기업들은 수입 손실이 더 커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실제로 아베노믹스 시행 당시에도 일부 수출 기업들이 원자재 수입 손실이 너무 크다며 정부에 무제한 양적 완화 정책 중단을 요청한 바 있다. 학계에서는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시기와 상황에 맞춰 시행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럴 시기가 아니라는 경고를 내놓고 있는 것이다.
한국 경제계는 사나에노믹스 추진으로 인한 악영향을 벌써부터 우려하고 있다. 아베노믹스 당시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이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자동차 관세를 먼저 낮추는 데 성공한 상황에서, 한국의 자동차 업계를 비롯한 수출업계는 상당한 압박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엔저가 심화되면 일본의 수출 경쟁력이 크게 강화되기 때문에 한국 기업들의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한국 입장에서 엔저가 장기화되면 통화 및 금리 정책을 운용할 여력이 크게 줄어든다는 점이 문제다. 일본이 초저금리 정책을 밀어붙이면 엔화가 절하되고, 상대적으로 해외 자본이 일본으로 쏠리게 된다. 이는 원화 가치의 동반 하락으로 이어져 한국의 인플레이션을 심화시킨다. 또한 일본 물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해지면서 한국인들이 일본 여행과 소비를 늘리게 되고, 이는 한국의 내수 경기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당시 아베노믹스는 '근린궁핍화 정책'이라는 비난을 받았는데, 이것이 반복될 경우 한국 경제가 입을 피해가 상당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한국도 이에 맞춰 상응하는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경제 정책 외에도 다카이치 총리의 극우 성향과 평화헌법 개정 움직임은 한국의 안보 상황에 중대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어 주목된다. 다카이치 총리가 내세운 주요 공약 중 하나는 '강한 일본'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는 일본을 전쟁 가능 국가로 만들고 자위대를 정식 군대로 재편성하겠다는 목표를 포함한다. 이를 위해서는 일본 헌법 제9조, 일명 평화헌법을 개정해야 한다. 평화헌법은 일본의 국가 교전권 포기와 군대 보유 금지, 무력 행사 영구 포기를 명시하고 있는 조항이다.
다만 당장 평화헌법 개정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자민당과 유신회가 연립해 다카이치 정권이 출범했지만, 기존 연립정당이던 공명당이 연립에서 이탈했기 때문이다. 공명당은 평화헌법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연립 이탈의 주요 이유도 헌법 개정 문제였다. 이로 인해 개헌에 필요한 의석수를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며, 평화헌법 개정 논의가 본격화될 경우 공명당을 비롯한 야당들의 강력한 반대가 예상된다.
그러나 우려되는 점은 미국이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만 해협에서 분쟁이 발생할 경우 일본의 파병을 가능하게 하려면 평화헌법 개정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헌법이 개정되어야 교전권이 생기고 해외 파병이 원칙적으로 가능해진다. 미국의 강력한 요구를 배경으로 다카이치 총리가 야당을 강하게 압박할 경우 헌법 개정이 현실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만약 일본의 평화헌법이 폐기되고 일본이 재무장할 경우, 이는 한국의 안보 상황에 매우 큰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까지 한국군의 대부분 전력은 북한이나 중국을 염두에 두고 배치되어 있었지만, 일본의 군사력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특히 북한이 계속 동해상으로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는데, 지금까지는 일본이 실질적인 군대가 없어 공식적인 무력 대응을 자제해왔지만, 군대가 창설되면 한국과 별개로 개별 대응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일본의 변화 가능성을 면밀히 주시하고, 대미·대일 외교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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