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고개 든 보유세 인상론… '시장 안전판'인가, '조세 칼날'인가

양도세 유예 연장 여부도 변수
"정치 아닌 구조적 관점서 접근"

정부가 '10·15 부동산 대책'을 발표한 지 일주일여 만에 보유세 인상론이 다시 수면 위로 떠 올랐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잇따라 보유세 강화 필요성을 언급하면서다. 기획재정부는 구 부총리의 "미국은 보유세가 1%다"라는 발언에 대해 "공식 입장은 아니다"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부동산 시장에선 정부가 다음 수요 억제 카드로 세제 개편안을 꺼낼 수 있다는 관측이 확산하고 있다.


구 부총리가 내세운 '응능부담(應能負擔)' 원칙은 부담 능력에 맞게 과세하겠다는 취지로, 보유세를 올리는 대신 양도소득세를 낮춰 세제 형평성과 시장 유동성을 동시에 확보하겠다는 구상으로 해석된다. 보유세를 강화하면 다주택자의 세금 부담이 누적돼 단기 차익을 노린 투기 수요를 억제할 수 있지만, 반대로 자산가뿐 아니라 은퇴 고령층이나 1주택 실수요자에게도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불가피하다. 소득이 줄었는데 보유세가 급등할 경우 현금흐름이 부족한 세대에는 이른바 '세금 폭탄'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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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유세, 시장 안정 핵심 수단이자 논쟁의 중심= 보유세는 부동산을 소유하는 동안 매년 부과하는 세금으로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종부세)로 구성된다. 단순한 세수 확보 수단을 넘어 부동산 시장의 과열을 억제하고 조세 형평성을 높이는 핵심 정책 도구로 평가받는다. 현재 한국의 주택 보유세 실효세율은 주택가액 대비 0.16~0.20% 수준이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베일리' 전용 84㎡(34평) 중층 이상 주택의 올해 6월 기준 공시가격은 37억4900만원, 보유세는 약 1803만원으로 실거래가 대비 0.32% 수준이다. 아현동 '마포 래미안 푸르지오'의 경우 공시가격 13억1800만원, 보유세는 231만원(종부세 22만원 포함)으로 실거래가 대비 0.19% 수준이다.


보유세 부담 수준을 두고도 견해는 엇갈린다. 보유세가 높다는 쪽은 경제규모 대비 보유세 세수를 따지고, 보유세가 낮다는 쪽은 실거래가 대비 세율을 따진다. 한국지방세연구원은 한국의 보유세 부담이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상회한다고 본다. 신미정 선임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의 부동산 보유세는 GDP 대비 1.23%, 총조세 대비 5.15%로, OECD 평균(각각 0.97%, 3.75%)보다 높다. 신 연구원은 "민간 부동산자산 대비 실효세율은 낮게 평가되지만, 이는 국내 자산가치가 과대평가된 결과일 수 있다"며 "공시가격 현실화와 종부세 강화로 세 부담이 OECD 국가 중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고 설명했다.


반면 토지+자유연구소는 지난달 보고서에서 한국의 보유세 실효세율이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이 연구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의 보유세 실효세율은 0.15%로 30개국 중 20위, OECD 평균(0.33%)보다 낮았다. 다만 보고서는 "보유세 인상이 집값 안정으로 이어졌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며 공급 부족, 지역별 수요 격차, 유동성 요인 등 시장 구조적 요인이 더 큰 변수라고 분석했다.

◆文정부 보유세 부담 2.8배 증가…과세 부작용 우려도= 보유세 강화는 과거 정부에서도 시행된 바 있다. 문재인 정부 집권 마지막 해인 2021년 걷힌 보유세는 10조8756억원으로, 2016년(3조9392억원) 대비 2.8배 늘었다. 5년간 늘어난 세액만 약 7조원에 달했다. 당시 정부는 보유세와 양도세를 동시에 인상했으나, 결과적으로 매물 잠김 현상을 유발하며 부동산값 폭등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종부세 중심의 과도한 세제 강화가 민심 이탈과 정권 교체의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때문에 정부 내부에서도 세제 강화의 속도 조절 필요성이 제기된다.


다른 한편에서는 현행 보유세 수준으로는 '똘똘한 한 채' 현상으로 치솟은 고가 아파트 수요를 진정시키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한 정부 관계자는 "세제실에서는 보유세 강화를 부동산 대책으로 직접 보이려 하지 않지만, 현행 세제 구조상 부동산으로 돈이 몰릴 수밖에 없다"며 "공시가격 대비 60%인 공정가액비율(과세표준)부터 단계적으로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이 자산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핵심 요인이라는 점에서도 보유세 강화 필요성이 제기된다. 상대적으로 고가 주택 보유에 대한 부담이 낮고, 재산세·종부세 등 혜택이 집중된 현 구조에서는 서울·수도권 중심의 쏠림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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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도세 중과 유예 연장 여부 관심= 시장에선 보유세 강화 논의와 맞물려 양도소득세 완화 시나리오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양도세는 부동산을 팔면서 생긴 시세 차익에 부과하는 세목으로 거래세(취득세, 등록세)와 함께 시장 유동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쉽게 말해 5억원에 산 집을 8억원에 팔면 3억원의 이익에 대한 세금을 부과하는 구조다. 엄밀히 구분하면 취득세 등을 포괄하는 거래세와 성격이 다르지만, 부동산을 매매하는 과정에서 얽혀 있다 보니 거래세와 함께 언급된다.


정부 안팎에서는 시장 과열을 막으려면 보유세 강화와 함께 양도세·거래세 완화가 병행돼야 한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특히 내년 5월 9일 종료 예정인 양도세 중과세율 유예 조치의 연장 가능성이 주목된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유예가 종료될 경우 세 부담 증가에 따른 여론 악화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양도세 중과세율은 다주택자의 투기 억제를 위해 2021년부터 도입된 제도다. 2주택자에게는 기본세율(6~45%)에 20%포인트, 3주택 이상자는 30%포인트의 가산세율을 적용했다. 그러나 세 부담이 급증하면서 다주택자들이 매도 대신 보유를 선택했고, 이로 인해 매물 부족과 시장 왜곡이 심화했다. 이후 정부는 다주택자 매물을 시장에 유도하기 위해 2022년 5월부터 1년간 양도세 중과를 한시로 배제하는 조치를 시행했다. 이후로도 1년 단위로 유예 조치를 연장하면서 현재는 내년까지 다주택자가 중과세율 없이 기본세율을 적용받도록 유예 조치를 유지하고 있다. 장기보유특별공제 혜택도 함께 제공하고 있다.


◆"정치일정 아닌 구조 개편 관점에서 접근해야"= 전문가들은 세제 정책이 정치나 단기 부동산 안정 논리로 좌우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치 일정을 고려하거나 집값을 잡기 위한 시각으로 세제 개편을 하지 않아야 한다"며 "부동산에 묶인 유동성을 빼서 생산 금융, 혁신 성장으로 가는 목적에서 구조적으로 세제 개편을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한국부동산경영학회장)는 "보유세 인상이 곧바로 매물 증가로 이어지긴 어렵다"며 "보유세보다 가격 상승 기대감이 더 큰 상황에서는 조세 저항만 높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결국 정부가 취득세 등 거래 관련 세목을 함께 낮춰 시장의 부담을 완화할 의지가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전망했다.


정부 관계자는 "부동산 세제 개편은 국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연구용역을 통해 방향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유예 연장 가능성에 대해선 "거래세 완화 기조를 유지한다면 연장이 자연스럽다"고 덧붙였다.





세종=이동우 기자 dwlee@asiae.co.kr
세종=김평화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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