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에서 한국인 등 외국인 대상 범죄가 잇따르는 가운데, 일본도 대대적으로 수사에 나섰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 수법으로 '고수익 아르바이트'로 유인해 캄보디아로 일본인을 떠넘긴 일당이 체포됐으며, 일본 폭력단과 중국 범죄 조직이 캄보디아에서 합심해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정황마저 포착됐다.
25일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아이치현 경찰은 최근 캄보디아 범죄 단지와 일본을 오가던 중국 국적의 용의자 2명을 체포했다. 경찰은 이들이 지난 6월 캄보디아 현지에서 보이스피싱에 가담한 일본인 29명이 구속된 사건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다. 범죄 단지 안에서 일본인들을 관리하고 중간 통역을 맡는 우두머리라는 것이다.
일본인 29명이 캄보디아 프놈펜 공항에서 일본으로 가는 항공기에 탑승하고 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범죄단지에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 등의 범죄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닛테레.
원본보기 아이콘다른 범죄 단지에는 '야쿠자'로 불리는 일본 폭력단이 가담했다는 정황도 드러났다. 지난 17일 일본 경시청은 또 다른 범죄 단지 보이스피싱 그룹의 우두머리 3명을 체포했다. 체포된 3명은 중국 국적의 회사원 젠 링, 무직인 일본인 미야시로 쇼헤이, 그리고 직업이 밝혀지지 않은 다른 중국인 1명이다. 이 중 젠은 캄보디아 범죄 단지 우두머리로, 이 단지에서만 지금까지 50억엔(470억원)에 달하는 범죄 수익을 챙겼다.
미야시로는 이미 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된 폭력 단원들과 오래전부터 일본에서 활동해왔다. 당시 그는 거점을 두지 않고, 경찰 단속을 피해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매일 12시간씩 전화를 돌리며 피해자를 물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야시로는 이렇게 자국에서 모은 범죄 수익으로 중국인들과 손을 잡고 지난해 5월 캄보디아 범죄 단지 설립에 가담했다. 경찰 관계자는 NHK에 "거점을 세우기 2달 전부터 젠과 다른 폭력 단원이 캄보디아에서 접촉했다"며 "중국 범죄조직과 일본 폭력단이 범죄 단지 설립과 운영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이들이 어느 곳에 범죄 단지를 조성했는지 위치나 규모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시청이 공개한 통화 녹음에 따르면, 이들도 우리나라처럼 경찰을 사칭하며 활동했다. 지난해 가을 오키나와현에 거주하는 70대 남성에게 자동응답기로 전화를 걸어 "귀하가 계약하신 전화번호는 약 2시간 후 정지된다. 상담원 연결을 원하시면 1을 눌러달라"고 접근했다. 남성이 1번을 누르자 '종합통신기반국'을 사칭한 인물로 연결돼 "당신의 핸드폰으로부터 스팸 문자가 발송되고 있다. 개인정보가 유출돼 악용된 것으로 보이니 경찰에 즉시 상담하라"면서 경찰서 담당자를 연결해준다고 안내했다.
이후 자동응답으로 '긴급 통보 시스템으로 관할 경찰서로 전화를 연결 중이니 잠시만 기다려달라'라는 메시지를 송출하고, 경찰관을 사칭한 인물이 전화를 받아 "전화번호와 은행 계좌가 조직범죄에 이용됐으니 수사에 협력해달라"며 전용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하고 송금을 요구했다. 피해자는 4차례에 걸쳐 총 3000만엔(2억8269만원) 이상을 송금했다.
자발적인 범죄 가담 외에도, '고수익 아르바이트'로 포장해 캄보디아 현지로 사람을 유인하는 경우도 있었다. 과정은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것과 비슷했다. 구인 사이트에 홍보하며 사람을 모집하고, 지원자가 태국 등 캄보디아 인근 국가로 입국하면 차량에 태워 범죄 단지로 데려가는 식이다. 잡혀간 이들은 대부분 범죄 단지에서 보이스피싱이나 로맨스 스캠을 위해 현지로 전화를 거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렇게 모집된 사람 중에는 20대 대학생도 있었는데, 그는 "가족이 돌아가셔서 잠깐 가봐야 한다"고 사정해 가까스로 캄보디아를 탈출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알려진 범죄 단지의 실상과 마찬가지로 이들도 여권을 압수당하고 총으로 무장한 경비원들에게 감시당했다고 진술했다. 단지는 담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내부에는 편의점과 유흥업소, 이발소 등이 있었다고도 일관되게 밝혔다. 이들은 "범죄 단지에는 1000명 정도가 더 있었고, 다른 아시아 지역에서 보이스피싱 전화를 위해 건너온 사람들도 있었다"고 언급했다.
일본도 동남아시아 일대에서 보이스피싱·로맨스 스캠 등에 가담하다 적발된 자국민이 늘어나는 추세다. 일본 경찰청에 따르면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태국·필리핀·캄보디아·베트남 4개국 14개 범죄 단지에서 범죄에 가담한 일본인 총 178명이 체포됐다. 필리핀에서는 2019년에 한 범죄 단지에서만 52명이 붙잡힌 바 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