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보세]그건 진짜 독서가 아니야

본질 흐려진 출협 독서 실태조사
'얼마나'보다 '어떻게' 읽는지 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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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한출판문화협회 산하 한국출판독서정책연구소가 이색적인 독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만 19세 이상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이번 조사에서 2024년 성인 독서율은 87.8%로 나타났다. 2023년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민독서실태조사 결과(43%)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치다.


보고서에 따르면 성인들이 가장 많이 읽은 매체는 종이책이었으며 그다음은 웹툰(41.4%), 전자책(37.5%), 잡지·웹진(34.9%) 순이었다. 독서량은 1인당 평균 종이책 5.4권, 전자책 1.4권, 웹소설 35.7화, 웹툰 42.8화, 오디오북 0.8권, 잡지·웹진 1.1호, 학술논문 0.9편으로 집계됐다.

연구소는 이번 조사의 목적을 "한국의 독서율이 세계 최저 수준이라는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또한 해외에서는 한국처럼 체계적인 독서 실태조사가 드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도 최근 10년 내 조사 자료가 없는 곳이 많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따라서 조사 주기와 방식이 다른 국가와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설명이다.


이번 조사에서 연구소는 '독서'와 '출판'의 개념을 기존보다 폭넓게 정의했다. 만화, 웹툰, 수험서, 논문, 잡지 등 이전 조사에 제외됐던 매체를 모두 포함한 것이 핵심이다. 이로 인해 정부의 2023년 조사 결과(독서율 43%)와 출협의 2025년 조사 결과(87.8%) 사이에는 큰 차이가 나타났다.


출협은 출판문화산업진흥법 제2조와 저작권법 제63조에 따라 출판 콘텐츠를 '글과 그림 등 저작물을 종이나 전자적 매체에 실어 발행한 간행물'로 정의하고 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웹툰, 잡지, 학술논문은 물론 교과서, 학습참고서, 수험서까지 모두 '책'으로 분류된다. 사실상 활자가 인쇄된 대부분의 매체를 책으로 간주하면서 독서량의 절대치가 크게 높아진 셈이다.

출협의 의도는 명확하다. '한국의 독서율이 세계 최저 수준이라는 통념은 근거 없는 주장'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오히려 독서 문화의 본질을 흐릴 우려가 있다. 낮은 독서율은 단순히 '한국인이 책을 덜 읽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어떤 책을 어떻게 읽고 있는가'를 되돌아보게 하는 지표다. 이를 억지로 끌어올리려는 시도는 '우리 아이 기죽이지 말자'라는 식의 성적 부풀리기에 가깝다. 과연 이런 방식이 독서 생태계의 발전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까.


해외 주요 국가의 독서 실태조사에서 교과서, 참고서, 수험서를 명시적으로 포함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학술논문을 포함하는 사례도 드물다. 책으로 인정하는 기준을 지나치게 완화하면 결국 유네스코(UNESCO)가 제시한 책의 정의 '표지를 제외한 49쪽 이상의 비정기 간행물'마저 흔들릴 수 있다.


'책을 읽지 않더라도 책을 사는 행위가 곧 독서의 일부'라는 안일한 인식은 이미 한국 사회 전반에 퍼져 있다. 이제는 '무엇을 책이라 부를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답해야 할 때다. 교육 과정에서 의무적으로 읽는 교과서까지 독서에 포함하는 것은, 기준을 바꿔 성과를 포장하는 일에 불과하다. 현상은 그대로인데 수치만 달라진다면 그것은 변화가 아니라 착시다. 독서문화가 진정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읽었는가'보다 '어떻게 읽었는가'에 대한 성찰이 먼저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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