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라면 업계 '원조' 삼양식품 과 '절대 강자' 농심 이 사명을 걸고 맞붙는다. 삼양식품은 다음 달 신제품 '삼양라면 1963'을 선보이고, 농심이 올해 초 창립 60주년을 맞아 내놓은 '농심라면'에 도전장을 던졌다. 반세기 넘게 이어진 양사의 라이벌 구도는 '옛날 라면'으로 다시 불 붙은 모양새다.
22일 삼양식품에 따르면 회사는 신제품 '삼양라면 1963' 출시를 앞두고 오는 11월3일 서울 시내의 한 호텔에서 미디어 대상 신제품 행사를 개최한다.
삼양식품이 신제품 출시 기념행사를 여는 것은 창사 이래 처음이다. 앞서 오너 3세인 전병우 삼양식품 최고마케팅책임자(CMO)가 주도했다고 알려진 '맵탱' 브랜드 출시뿐 아니라 메가 브랜드가 된 '불닭볶음면' 출시 당시에도 별도의 기념 행사는 개최하지 않았다. 그만큼 신제품에 힘을 많이 싣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정수 부회장도 이번 신제품 행사에 참석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신제품 '삼양라면 1963'은 1963년 국내 최초 라면으로 탄생했던 삼양라면을 재해석해 출시하는 만큼 의미가 남다르다. 단순한 복고 상품이 아니라, '원조의 자존심'을 되찾겠다는 상징적 프로젝트로 평가된다.
제품의 가장 큰 특징인 동물성 지방인 우지(소기름)로 면을 튀겨냈다는 점인데, 이는 과거 '우지 파동'으로 입은 불명예를 벗겠다는 행보로 풀이된다. 과거 삼양식품은 우지로 만든 삼양라면 등을 출시한 이후 시장을 장악했지만, 1989년 공업용 우지를 썼다는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으며 타격을 입었다. 당시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가 우지 라면을 두고 인체에 무해하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지만, 소비자 불신은 돌이킬 수 없었다. 이 사건 이후 삼양식품은 라면 업계 1위에서 밀려나 농심과 오뚜기에 추월당했고, 2010년대 초중반까지 3위에 머물렀다. 현재 시중에서 판매되는 모든 라면은 식물성 기름인 팜유로 면을 튀기고 있다.
삼양식품은 '삼양라면 1963'을 통해 내수 시장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회사는 '불닭볶음면' 시리즈의 전 세계적인 흥행으로 지난해 해외 매출이 전체의 77%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이 기간 국내 매출은 3921억원으로 전체의 23% 수준에 그쳤다. 내수 부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해외 매출 호조는 회사 실적에 긍정적이지만, 국내 소비자의 입맛은 충분히 사로잡지 못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국내 라면 시장은 농심이 55% 안팎의 점유율로 선두를 지키고 있으며, 오뚜기와 삼양식품이 뒤를 잇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솔직히 불닭볶음면은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선 인기가 많은 제품은 아니다"라며 "불닭은 글로벌 판매를 확대하고, '삼양라면 1963'으론 내수를 노리는 투트랙 전략을 가져가려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이 불닭볶음면을 구입하는 모습. 연합뉴스
사명을 건 라면을 먼저 내놓았던 농심은 삼양라면 부활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중이다. 농심은 지난 1월 창립 60주년을 맞아 '농심라면을 출시했다. 1975년 출시된 농심라면은 '형님 먼저, 아우 먼저'라는 광고 카피로 소비자에게도 특별한 추억이 남아있는 제품이다. 특히, 롯데공업이었던 당시 사명을 농심으로 바꾸게 된 바꾸는 계기가 될 만큼 상징성이 큰 제품으로 꼽힌다.
'농심라면'은 출시 3개월 만에 1000만봉 판매를 돌파하며 초반 흥행에 성공했다. 구체적인 누적 판매량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후 판매세를 안정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업계에서는 연매출 200억~300억 원 규모로 브랜드 유지선에 안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라면 업계에선 통상 신제품 출시 이후 연매출 200~300억원을 내면 브랜드를 유지하며, 500억원 매출을 내면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브랜드로 분류하고 있다. 1000억원 이상 매출을 내는 제품은 대형 히트작으로 분류된다.
농심은 이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농심라면큰사발면' 등 변형 제품으로 라인업을 확대하며 브랜드 확장 전략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농심라면' 연출 이미지. 농심
업계는 이번 삼양식품과 농심의 맞대결을 단순한 복고전이 아닌 '브랜드 리빌딩(재정립)' 경쟁으로 본다. 과거 히트 상품이라는 성공 공식을 갖고 있지만, 지금의 소비자에게 통할 새로운 공감 코드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단순 리뉴얼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향수를 자극하는 이름만으론 한계가 있고, 현재 세대의 취향과 트렌드를 반영한 제품력·스토리텔링이 함께 뒷받침돼야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레트로 제품은 초기 반응이 빠르지만, 결국 완성도가 브랜드의 수명을 결정한다"며 "업계의 세대교체가 본격화되는 가운데, 높은 품질로 누가 더 오래 시장을 지배할 지속력을 갖추느냐의 싸움"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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