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부동산 대책에 '전세의 월세화' 가속…홍콩 미국 자본만 웃는 이유[부동산AtoZ]

이재명 정부 부동산 대책으로 '전세소멸' 가속화
미국·캐나다·홍콩 등 글로벌 자본, 기업형 임대주택 시장 장악
국내 PEF도 ‘월세 시장’ 진출…연기금은 여론 우려에 소극적
월세 비중 60% 돌파, 서울 월세지수도 최고치…시장 재편 가속
전문가들 “월세 세액 공제·바우처 등 서민지원 시급…정책 개입 늦다”

정부의 잇따른 부동산 대책이 '전세의 월세화'를 촉진하면서 외국계 투자 자본이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월세 시장 성장을 노리고 일찌감치 민간 임대시장을 점령한 업체들로, 집값을 잡기 위해 전세 수요 억제에 나선 현 정부의 정책에 직접적인 수혜자가 됐다. 이들은 이번 정부 들어 투자를 확대하는 등 입지를 다지기 위한 총력전에 들어갔다. 서민의 주거비 부담 증가가 불 보듯 뻔한 상황이어서, 주거 안정을 위한 월세 관련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2일 착공한 맹그로브 당산 조감도. MGRV.

지난 22일 착공한 맹그로브 당산 조감도. MGR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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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부동산 개발업계에 따르면 정부의 10·15 대책 직후인 지난 20일 아시아태평양 주거 전문기업인 홍콩계 '위브리빙'이 글로벌 기관투자자와 함께 한국 임대주택 조인트벤처(JV)를 설립했다. 서울 지역에 총 6350억원 규모로 임대주택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계획이다. 이는 한국의 기업형 임대주택 시장에 투자한 외국계 자본 중 역대 최대 규모다.

이 JV는 최대 3150억원의 추가 투자까지 예고했다. 국내 부동산 디벨로퍼 엠지알브이(MGRV)는 22일 '맹그로브 당산' 착공에 돌입했다. 441실 규모의 '임대형 기숙사'로, 지난 1월 캐나다연금위원회(CPPIB)와 설립한 5000억원 규모 JV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미국계 사모펀드(PEF) 운용사 KKR과 모건스탠리, 하인즈, 그레이스타, 인베스코, M&G 리얼에스테이트 등도 국내 운영사와 손잡고 기업형 임대주택을 운영 중이다. 이들은 이미 1만실 이상의 월세 상품을 확보했다. 5년 내 두 배로 물량을 확대한다.


특히 단순 투자를 넘어 운영사(오퍼레이터)까지 한국에 진출하고 있다. 호주 1위 오퍼레이터로 3만5000가구를 운영 중인 '더리빙컴퍼니'는 지난 8월 서울 사무소를 공식 개소하며 한국 진출을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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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자본도 뒤늦게 이 시장에 가세하고 있다. 국내 대표 PEF 운용사 한앤컴퍼니는 최근 SK디앤디 경영권을 확보했다. 기업형 임대주택 '에피소드'를 운영하는 SK디앤디의 자회사 DDPS를 통해 임대 운영 플랫폼 구축에 나선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아직 전세 제도에 아직 익숙하다 보니 기업들의 월세시장 진출도 한발 늦은 편인 것 같다"며 "특히 자본시장의 '큰손'인 연기금의 경우 국민을 상대로 '월세 장사'를 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어 국내 자본이 들어오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고 했다.

정부가 사실상 전세 시장의 소멸을 유도하는 정책을 구사하면서, 거대 자본이 임대시장에 속속 흘러드는 수순이다. 이재명 정부의 6·27 대책은 수도권 전세대출 보증 비율을 90%에서 80%로 낮췄다.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도 금지하면서 사실상 갭투자형 전세 거래를 차단했다. 10·15 대책에서는 토지거래허가구역 확대로 실거주 의무(2년) 의무가 생겼다. 1주택자 전세대출 총부채 원리금상환비율(DSR) 적용 등 규제도 추가했다. 최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우리나라 전세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레버리지가 계속 오를 것"이라며 "고통이 있어도 끊어야 할 시점"이라고 언급하면서 이 같은 정책적 방향 전환을 확인하기도 했다.


이미 임대인들은 안정적인 월세로 돌아서고 있다. 세입자들은 높아진 대출 문턱에 월세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다. 국토교통부 주택통계에 따르면 임대차 계약 중 월세 비중은 지난 8월까지 평균 62.2%를 기록했다. 아파트 월세 비중마저 46.8%로 과반에 육박했다. 모두 역대 최고치다. KB부동산의 서울의 아파트 월세 지수는 매달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우며 지난 9월 129.7을 기록, 약 4년 만에 30% 가까이 폭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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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분위기 속에 월세는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전세 제도로 주거비 부담이 낮았던 만큼 전세가 사라지면 임대료 상승 여력이 크다. 국토교통부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에 따르면 한국의 소득 대비 주택임대료(RIR)는 15.8%로, OECD 평균(21.8%)이나 미국(24.4%), 일본(19.9%) 등보다 현저히 낮다.


전문가들은 "외국계 자본이 임대 시장을 주도하는 가운데 서민의 주거비가 급등하는 상황이 우려된다"고 경고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 전문위원은 "월세 비중과 금액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상황에서 정부 대책은 상대적으로 소홀한 편"이라며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 월세 바우처나 월세 세액 공제 등 지원책을 지금보다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오유교 기자 562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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