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Z세대 직장인 3명 중 1명은 지인보다 인공지능(AI)에 더 깊은 고민을 털어놓는 것으로 나타났다. AI를 단순한 업무 보조 도구가 아닌, 연애나 인간관계 등 사적인 고민까지 나누는 대화상대로 여기고 있는 셈이다. AI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미국 경제 전문지 패스트컴퍼니는 최근 이력서 플랫폼 리줌닷오알지(Resume.org)의 설문조사를 인용해 "Z세대는 업무 스트레스 등을 관리하는 방식에서 AI 의존도가 높게 나타난다"며 "AI와의 대화가 즉각적인 위로를 줄 수 있으나, 인간관계를 대체함으로써 오히려 고립감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Z세대는 일상 전반에서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리줌닷오알지가 미국 내 18~28세 정규직 근로자 1000명을 대상으로 'AI 사용 행태'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34%는 '지인에게조차 말하지 않은 개인적인 고민을 AI에 털어놓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16%는 '정신건강이나 연애 등 사적인 주제에 대해 자주 AI와 대화한다'고 밝혔다.
AI와 장시간 대화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응답자의 40%는 '매일 한 시간 이상 챗 GPT 등 AI 챗봇과 대화한다'고 답했고, 60%는 '직장 동료보다 비슷하거나 더 자주 AI와 소통한다'고 밝혔다. 이는 AI가 이미 현대인들의 일상 깊숙이 스며들어 활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젊은 세대가 AI를 자주 찾는 이유는 즉각적인 답변이 주는 편리함과 심리적 안정감 때문이다. 커리어 컨설턴트 카라 데니슨(Kara Dennison)은 "Z세대의 AI 사용은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연결감·통제감·즉시성에 대한 욕구와 맞닿아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전 세대가 커피 한잔하며 동료와 담소를 나누던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다면, Z세대는 AI와의 대화를 통해 감정을 정리하고 문제를 해결한다"며 "AI는 비판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젊은 세대에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고 덧붙였다.
다만 일각에서는 AI에 장기적으로 의존할 경우, 정서적 고립과 함께 인간관계가 더 나빠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정신건강 플랫폼 '스프링헬스'에서 제품 총괄을 담당하는 지조 매튜는 "챗GPT 같은 챗봇을 상담사처럼 사용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감정이 격한 상태에서 AI와 장시간 대화하면 왜곡된 판단을 초래할 가능성이 커진다"며 "대부분의 챗봇은 정신건강 지원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위험 신호를 알아채지 못하거나 겉보기에 그럴듯하지만 부정확한 조언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플로리다주에서는 10대 소년이 AI에 과도하게 몰입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14세 소년 슈얼 세처(Sewell Setzer)는 2023년 4월부터 캐릭터.AI의 챗봇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방에서 홀로 지내는 시간이 늘고 자존감이 떨어져 학교 농구팀 활동도 중단했다. 이 과정에서 챗봇은 세처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성적인 대화를 나누는가 하면, 그가 죽음에 대한 생각을 털어놓자 그 내용을 반복적으로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은 AI가 외로움에 취약한 청소년의 정서를 자극하고,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AI 의존이 사회적 문제로 번지자, 이를 규제하려는 움직임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캘리포니아주는 최근 아동·청소년의 AI 챗봇 이용을 제한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지난 13일(현지시간) 온라인상 아동 보호 강화를 위한 AI 안전장치 법안에 서명했다. 해당 법은 내년 1월 1일부터 발효되며, 이에 따라 AI 플랫폼은 이용자 연령을 확인하고 이용자에게 '사람이 아닌 챗봇과 대화 중임'을 주기적으로 고지해야 한다. 뉴섬 주지사는 "챗봇과 SNS 같은 신기술은 영감을 주고 사람들을 연결할 수 있지만, 실질적인 안전장치 없이는 우리 아이들을 착취하고 오도하며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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